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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엑스에서 만난 인연,나를 뛰어넘은 제자제조업 30년, 데이터로 다시 쓰다 2026. 1. 29. 14:35
(시스템은 내가 만들었지만, 신화는 그가 완성했다)
1. 코엑스, 운명의 시작 그날은 코엑스(COEX)에서 열린 스마트 팩토리 전시회 날이었다. 나는 내가 직접 밤을 새워 개발한 '디지털 간판(Kanban) 시스템 SW'를 들고 부스를 지키고 있었다. 수많은 관람객 사이로 한 중년의 신사가 내 부스 앞에 멈춰 섰다. 그는 나의 소프트웨어를 유심히 지켜보며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가 바로 BW사의 사장님이었다. 그 우연한 만남이 나를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이끌 줄은 꿈에도 몰랐다.
2. "Let's work together" (경쟁을 뚫다) 얼마 후, 나는 BW사에 정식으로 컨설팅 제안을 하러 갔다. 단독 미팅인 줄 알았으나, 회의실 문을 여는 순간 등 뒤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미 쟁쟁한 다른 컨설팅 회사들이 와서 발표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고 없는 '경쟁 프레젠테이션'이었다.

초기 시스템 제안서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화려한 이론 대신 코엑스에서 보여줬던 내 시스템의 '실전성'을 강조했다. "이론은 누구나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장 내일이라도 현장의 물류를 바꿀 수 있습니다."
발표가 끝나자, 배석했던 외국인 부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Let's work together." 나의 투박하지만 확실한 현장 중심의 제안이 통했고, 나는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3. 미로(Maze) 같은 공장, 그리고 흙 속의 진주 의욕적으로 현장에 들어갔지만, 현실은 참담했다. 공장은 거대한 미로 같았다. 물건은 쌓여 있고, 무엇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동맥경화' 상태였다. 나는 일단 비슷한 모델끼리 묶는 '그룹 테크놀로지(GT)' 기법으로 실타래를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생산 데이터를 붙들고 계산기와 씨름하던 어느 날이었다. "이 공정 리드타임이... 재고가 몇 개 남지?" 머리를 싸매고 있는 내 옆에서, 작업복을 입은 한 직원이 무심하게 툭 던졌다.
"그거 450개입니다."
깜짝 놀라 확인해보니 정확했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그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제가 주산 3단에 암산 2단입니다."
그의 이름은 심병운이었다. 나는 직감했다. '이 사람이다.' 나는 즉시 그를 내 전담 스태프로 차출했다.
4. 환상의 콤비와 '금요교육' 심병운 씨와의 만남은 신의 한 수였다. 나의 '시스템 설계(이론)'와 그의 '현장 디테일(실무)'이 만나자, 일이 일사천리로 풀리기 시작했다. 내가 이론을 설명하면 그는 그것을 현장 언어로 번역해 적용했다.
여기에 BW사 사장님의 확고한 철학이 더해졌다. "정해진 룰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킨다." 간판이 없으면 라인을 세웠다. 타협은 없었다.

금요 교육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 그리고 전설의 '금요교육'. 매주 금요일이면 모든 기계를 멈추고 전 직원이 모여 변화와 혁신을 공부했다. 심병운 씨와 나도 그 단상에서 목이 터져라 강의했다. 시스템보다 무서운 것이 '문화'였다.
5. 에필로그: 청출어람(靑出於藍) 시간이 흘러 간판 시스템은 BW사의 핵심 경쟁력이 되었다. 그리고 들려온 소식은 나를 전율케 했다.
그때 주판알을 튕기던 작업자 심병운 씨는 현재 그 회사의 부장이 되었다. 단순한 승진이 아니다. 그는 현재 그룹사 전체를 다니며 간판 시스템을 전파하는 '최고의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지금은 그가 나보다 훨씬 더 성공한 전문가다. 그는 내가 떠난 뒤에도 현장을 지키며, 시스템을 더 정교하게 진화시켰다.
그가 나보다 더 유명해진 것이 섭섭한가? 천만에. 계산기를 두드리던 나를 암산으로 이겼던 그 청년이, 이제는 대한민국 제조 현장의 거목(巨木)이 되었다. '심병운'이라는 원석을 알아보고, 그를 나보다 뛰어난 리더로 성장시킨 것. 그것이야말로 내 40년 엔지니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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