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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기록 37] 그 시절, 우리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큰매형을 그리며추억 기록 2025. 12. 28. 09:22728x90반응형SMALL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나에게는 친부모님만큼이나 의지가 되고 감사한 분들이 있었다. 바로 큰누나와 큰매형이다. 내가 결혼할 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것은 물론이고,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고비마다 두 분은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셨다.
오늘은 문득, 이제는 볼 수 없는 그 시절의 큰매형이 사무치게 그립다.
인덕원 누나 집, 우리 가족의 안식처
명절이나 집안에 대소사가 있을 때면 우리 남매들과 매형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인덕원에 있는 큰누나네 집으로 모여들었다. 그곳은 단순한 모임 장소가 아니었다. 세상살이에 치이고 힘든 일이 있어도, 그 집에 모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만 같은, 참으로 편안하고 따뜻한 안식처였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큰매형이 계셨다. 재미있는 사실은 매형이 본가에서는 막내아들이셨지만, 처가인 우리 집안에서는 가장 큰 어른이셨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매형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우리 대가족을 이끄셨다. 막내의 살가움과 맏형의 리더십을 동시에 갖춘 분이셨기에, 우리 가족 모두는 매형을 진심으로 따르고 존경했다.

줄지어 떠난 그해 여름의 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 중 하나는 온 가족이 다 함께 떠났던 여름 휴가다. 지금은 추억 속의 풍경이 되었지만, 그 시절 우리는 여름을 나기 위해 시장에서 든든한 보양식을 한 솥 가득 준비하곤 했다.
워낙 대식구다 보니 차 한 대로는 어림도 없었다. 둘째 매형의 봉고차를 필두로 여러 대의 차량에 나눠 타고 줄지어 여행길에 올랐다. 차 안은 우리 아이들과 조카들의 웃음소리로 꽉 찼고, 휴게소라도 들를 때면 마치 단체 관광을 온 것처럼 왁자지껄했다.
준비해 간 음식을 야외에서 함께 끓여 나눠 먹으며 땀을 흘리고,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식히던 그 시간들. 무엇을 먹느냐보다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 준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때는 그 행복이 영원할 줄 알았다. 매형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우리 가족을 언제까지나 지켜줄 것이라 믿었다.
사라진 구심점, 그리고 그리움
하지만 야속하게도 큰매형은 지병으로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나셨다. 하늘이 매형을 데려가신 후, 거짓말처럼 우리 가족의 모임도 예전 같지 않게 되었다. 언제나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던 강력한 구심점이 사라지자, 가족들이 다 같이 모이는 일도 점차 소원해졌다.
명절이 다가오거나 삶이 고단할 때면, 인덕원 집 거실에 앉아 우리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시던 매형의 모습이 떠오른다.
"처남, 걱정 마. 다 잘 될 거야."
그 투박하지만 따뜻했던 한마디가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본가에서는 사랑받는 막내였으면서, 우리에게는 누구보다 든든한 산이 되어주셨던 큰매형. 당신이 계셨기에 우리 가족의 그 시절은 참으로 따뜻하고 찬란했습니다.
매형,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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