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 기록 35] 교회를 핍박하던 아버지, 그리고 두 번의 장례식추억 기록 2025. 12. 27. 19:09728x90반응형SMALL
1. 나의 피난처, 7명의 친구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참으로 힘든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 절친이었던 정희수의 인도로 처음 '신동교회'에 발을 들였다. 기댈 곳 없던 내게 교회 친구들은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나를 지탱해 주는 기둥이었다.
희수, 나중에 목사가 된 항복이와 용성이, 희수와 결혼한 순우, 사업가가 된 대성이와 혁하, 그리고 유치원 선생님이 된 숙진이... 이 7명의 친구들은 내가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위로와 도움을 주었다. 우리는 지금도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아버지는 내가 교회에 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셨다. "교회에 미치면 집안 망한다"는 식의 핍박이 쏟아졌고, 나는 그 반대를 무릅쓰고 어렵게 신앙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2. 최전방으로 찾아온 아버지의 오해
내가 중위로 최전방에서 복무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부대로 찾아오셨다. 반가운 면회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내가 당신의 의료보험 혜택을 막아버렸다고 오해하고, 육군 본부의 지인인 '노 대령'이라는 분을 통해 부대장에게 압력을 넣으며 들이닥치신 것이다.
다행히 부대장은 평소 성실했던 나를 믿어주었고, 내가 상황을 수습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나는 사방거리의 '송광식당'에서 아버지와 마주 앉았다. 오해를 풀어드리고 나니, 아버지는 그제야 품에서 구겨진 진단서 한 장을 꺼내셨다.
"간경변인 줄 알았는데... 간암이란다."
그토록 강하고 무섭던 아버지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성남 비행장 끝자락 비닐하우스에서 밤낮없이 꽃을 키우며 치열하게 사셨던 분. 하지만 그 순간에도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모진 말을 쏟아내셨고, 나는 아버지가 여전히 우리 편이 아닌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팠다.
3. 기적 같았던 마지막 기도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다시 찾아갔다. 병상 곁에는 새어머니가 계셨다. 밤새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를 헌신적으로 돌보시는 모습에 고개가 숙여졌다.
그런데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평생 교회를 핍박하던 아버지가, 사후의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새어머니를 의지해서인지 기도를 하고 계셨다. 그 기도는 너무나 절박하고 구체적이었다.
"제발... 내 아버지(할아버지) 제사보다는 하루라도 늦게 가게 해주십시오."
할아버지 기일과 겹치지 않게 해달라는 그 기도가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 아버지는 거짓말처럼 할아버지 기일 바로 다음 날, 하늘로 떠나셨다.
4. 두 번의 장례식, 그리고 사과
아버지가 떠나신 날 밤, 당신은 내게 이복동생 세현이를 부탁한다고, 그리고 고향 의성에 묻히고 싶다고 유언을 남기셨다.
장례식은 참으로 기묘했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에 따라 '교회장'으로 예배를 드렸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큰집의 오영석 큰아버지(아내가 이름을 기억해 주었다. 참 따뜻했던 분이다)가 나서셨다. "자, 이제 교회 식은 끝났으니 집안 법도대로 하겠다."
그렇게 아버지는 교회 식으로 한 번, 고향의 유교 식으로 또 한 번, 총 두 번의 장례를 치르셨다. 그 복잡하고 긴 절차 속에서 뜻밖의 인물이 나에게 다가왔다. 바로 아버지를 대신해 부대에 압력을 넣었던 '노 대령'님이었다. 그는 내 손을 잡으며 쑥스러운 듯, 하지만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자네 아버지 말만 듣고 오해를 했네. 자네 부대장이 자네 칭찬을 침이 마르도록 하더구먼. 정말 미안하게 됐네."
부대장님은 나의 성실함을 믿어주었고, 그 믿음이 돌고 돌아 결국 아버지의 친구분에게까지 닿은 것이다. 아버지로 인해 생겼던 억울함이 장례식장에서 눈 녹듯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모든 갈등은 화해로 마무리되었다.
5. 에필로그
장례를 치르고 딱 한 달 뒤, 나는 군복을 벗고 전역을 했다.
평생 교회를 반대하다가 죽음 문턱에서야 십자가를 바라본 아버지. 그것이 진정한 회심이었는지, 아니면 남겨질 자식들을 위한 배려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마지막 화해와 기적 같은 타이밍 덕분에 나는 아버지를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먼 훗날 천국에서 아버지를 다시 만나면 꼭 여쭤봐야겠다. "아버지, 그때 진짜 믿으셨던 거 맞아요?"
반응형'추억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억 기록 연재]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하지 못할 누님들의 사랑 (9) 2025.12.27 [추억 기록 36] 비닐하우스에서의 땀방울, 그리고 우리를 지켜준 헌신적인 사랑 (1) 2025.12.27 [추억 기록 34] 45kg의 통뼈 소년, ROTC 장교가 되기까지 (6) 2025.12.27 [추억 기록 33] 독산동 단칸방의 햇살과 고마운 인연, 강한섭 선배님 (1) 2025.12.27 [추억 기록 32] 나의 어린 시절 최고의 놀이터, 효령대군 묘 (0) 2025.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