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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기록 32] 나의 어린 시절 최고의 놀이터, 효령대군 묘추억 기록 2025. 12. 27. 06:25728x90반응형SMALL
누구나 어린 시절,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뛰어놀던 자신만의 '아지트'나 '놀이터'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네가 있고 미끄럼틀이 있는 평범한 공원일 수도 있고, 동네 뒷산 언덕일 수도 있다.
나에게 있어 어린 시절 최고의 놀이터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효령대군 묘'를 떠올린다.
왕자의 무덤이 놀이터가 되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송구스럽고 아찔한 일이지만, 그때 그 시절 우리에게 그곳은 엄숙한 유적지가 아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공원이었다.
잘 가꿔진 폭신한 잔디는 넘어져도 아프지 않은 최고의 매트였고, 무덤을 지키고 서 있는 문인석과 무인석 조각들은 우리에게 훌륭한 정글짐이자 술래잡기의 은폐물이 되어주었다. 심지어 봉분 위까지 올라가 떼굴떼굴 구르며 놀았으니, 효령대군께서 지하에서 껄껄 웃으셨을지, 아니면 호통을 치셨을지 모를 일이다.
그때는 친구들과 신나게 술래잡기를 하고 잔디 냄새를 맡으며 뒹구는 그 순간이 마냥 즐거웠다. 지금은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접근조차 엄격히 제한되어 있겠지만, 내 기억 속 효령대군 묘는 언제나 열려 있는 따뜻한 품과 같았다.아내와 함께 떠난 조선 왕릉 기행
세월이 흘러 머리가 굵어지고, 작년과 올해에는 아내 영록이와 함께 특별한 여정을 시작했다. 바로 '조선 왕릉 순례'였다.
아내는 조선의 모든 왕릉을 다 가보겠다는 당찬 목표를 세웠다. 조선의 왕릉은 총 42기. 그중 2기는 북한(개성)에 있어 현실적으로 갈 수 없지만, 남한에 있는 40기를 거의 다 돌아보았다.
주말마다 지도를 펼치고 왕릉을 찾아다니는 길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역사 공부였다. 교과서에 밑줄을 그어가며 달달 외우던 죽은 역사가 아니라, 릉의 위치와 형태, 비석의 문구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을 눈으로 확인하는 생생한 배움의 시간이었다.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아는 것들
왕릉을 하나하나 순례하며 조선의 역사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도 역사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딱딱한 책상머리가 아니라, 직접 흙을 밟고 바람을 느끼며 선조들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역사가 훨씬 더 흥미롭고 가깝게 느껴졌을 것이다.
어린 시절, 그토록 신나게 뛰어놀았던 효령대군의 묘가 단순한 놀이터가 아니라 태종의 둘째 아들이자 세종대왕의 형으로서 그가 겪었을 삶과 역사의 무게를 담고 있는 공간임을 그때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그리운 그 시절의 웃음소리
물론, 아무것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봉분을 미끄럼틀 삼아 놀던 그때의 내가 그립기도 하다. 역사의 무게보다는 당장의 즐거움이 전부였던 그 순수함이 사무치게 그립다.
이제는 함부로 들어갈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성역이 되었지만, 내 마음속 효령대군 묘는 여전히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최고의 놀이터로 남아있다. 이번 주말에는 아내와 함께 찍은 왕릉 사진들을 정리하며, 그 시절 철없던 꼬마의 추억을 다시 한번 꺼내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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