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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기록 34] 45kg의 통뼈 소년, ROTC 장교가 되기까지추억 기록 2025. 12. 27. 08:58728x90반응형SMALL
살다 보면 누구나 잊지 못할 '숫자'가 하나쯤 있습니다. 저에게는 '45kg'이라는 숫자가 그렇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몸무게가 두 배나 늘어 체중 조절에 애를 먹고 있지만, 청년 시절의 저는 '말라 비틀어졌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가냘픈 체구였습니다. 오늘은 그 시절, 저를 키웠던 눈물 젖은 보양식과 기적 같은 임관 이야기를 꺼내 봅니다.
1. 독산동 도살장과 큰 매형의 '돼지 총알'
제 청년 시절, 큰 매형은 제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습니다. 형편없는 몸무게로 비실거리는 처남이 늘 안쓰러우셨던 모양입니다. 어느 날 저를 독산동 도살장으로 데려가시더니 생간과 천엽을 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름도 생소한 '돼지 총알'을 내미셨지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참 말하기 곤란한 부위입니다.) "이거 먹고 제발 살 좀 붙어라" 하시던 매형의 간절한 눈빛. 그 비릿하면서도 고소했던 보양식들은 사실 고기가 아니라 매형의 지극한 '사랑'이었습니다.
2. "저런 애랑 놀지 마라"… 상처가 된 말 한마디
당시 저는 신동교회를 다니며 친구들과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하루는 친구 순우네 집에 놀러 갔는데, 방 밖에서 순우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일부러 들으라고 하시는 소리 같았지요.
"순우야, 너 세웅이 같은 애랑 사귀면 안 된다. 저렇게 말라 비틀어져서 나중에 문제가 커..."
가난하고 볼품없어 보이던 제 모습이 친구 어머니 눈에는 못마땅하셨나 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턱 막혔습니다. 사실 저도 그 친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ㅎㅎㅎ) 하지만 그 모진 말은 오히려 제 안에 오기를 싹틔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 "병원장님, 저 통뼈라 괜찮습니다!"
대학 4년을 마치고 ROTC 장교 임관을 위한 마지막 신체검사 날. 결과는 '불합격'이었습니다. 시력은 0.1(기준 0.4)에 몸무게는 고작 45kg. 2년 동안 죽어라 훈련받았는데 여기서 무너질 순 없었습니다.
마지막 병원장님과의 면담 시간, 저는 눈을 똑바로 뜨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시력은 안경 쓰면 되고, 체중은 이래도 제가 '통뼈'에 '깡다구'가 있어서 아무 문제 없습니다!"
제 간절함이 통했을까요? 병원장님은 껄껄 웃으시며 승인을 해주셨고, 저는 당당히 장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4. 인생의 아이러니, 10kg의 반전
재미있는 건 그다음입니다. 그렇게 안 찌던 살이 광주 포병학교에 입교하자마자 붙기 시작하더군요. 한 달 만에 10kg이 불어 군복을 새로 맞춰야 했습니다. 군대 체질이었던 걸까요?

지금은 그때보다 두 배나 무거워진 몸무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가끔 거울 속의 저를 보며 생각합니다. 45kg의 약골 소년을 지금의 자리까지 이끈 건, 매형이 사준 돼지 총알의 영양분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응원과 제 안의 깡다구였다고 말입니다.
[에필로그: 인생은 알 수 없는 법]
세월이 흘러 전해 들은 후일담은 더욱 흥미롭습니다. 저를 '말라 비틀어졌다'며 걱정하시던 순우 어머니의 바람(?)대로, 순우는 결국 제 절친이었던 정희수와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제가 나라를 지키느라 군대에 가 있던 시절, 정희수가 교회 친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순우에게 멋지게 프로포즈를 했다고 하더군요. 친구의 용기 있는 고백에 어머니께서도 마침내 승낙의 미소를 지으셨겠지요. 비록 저는 순우의 짝이 아니었지만, 제 소중한 두 친구가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소식은 지금 생각해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인생의 재미있는 예고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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