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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기록 30: 고향 방문기 2] 핏기 어린 고기를 삼키던 시절, 나를 안아준 사람들추억 기록 2025. 12. 26. 21:34728x90반응형SMALL
1. 아버지의 고향, 의성으로 가는 길
편도 티켓 한 장을 손에 쥐고 아버지의 고향, 경북 의성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묘소가 있고, 아버지의 피를 나눈 친척들이 살고 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시골 풍경을 보고 있자니, 잊고 살았던 아주 오래전의 기억 하나가 툭 하고 튀어 올랐다.
2. 생존의 속도, 덜 익은 돼지고기
그때도 누군가의 부고를 듣고 내려간 상가(喪家)였다. 마당 한 켠에서는 조문객들을 대접하기 위해 돼지고기를 굽고 있었는데, 그 풍경이 지금 생각하면 참 기가 막히다. 석쇠 위 고기는 아직 붉은 핏기가 흥건한데, 사람들의 젓가락은 멈출 줄을 몰랐다.
"다 익을 때까지 기다리면 내 차례는 오지 않는다."
위생이나 맛을 따지기엔 우리는 너무 배가 고팠고, 시절은 팍팍했다. 덜 익은 고기라도 뱃속에 채워 넣어야 했던 그 모습은, 어쩌면 그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우리들의 처절한 '생존 본능'이었을지도 모른다.
3. 척박한 땅에도 꽃은 핀다
하지만 내 기억 속 의성이 마냥 핏기 어린 생고기처럼 비릿하고 거친 것만은 아니다.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유독 나에게 따뜻한 곁을 내어준 '어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할머니는 아버지의 새어머니셨다. 어린 마음에 거리감을 느낄 법도 했지만, 할머니는 핏줄을 따지지 않고 나를 참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그 투박한 손길에서 느껴지던 온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또 한 분. 이름은 희미해졌지만 '세화 형님의 아버지'로 기억되는 분이 계신다. 친척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나를 아껴주셨던 그분. 훗날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가 영전에 절을 올렸을 만큼, 어린 나에게 그분이 베풀어주신 마음은 깊고 진했다.
4. 거칠지만 따뜻했던 시절을 그리며
입 안에서는 덜 익은 고기의 비릿함이 맴돌지만, 가슴 속에는 할머니와 아저씨가 주셨던 따뜻함이 가득 차오른다. 어쩌면 우리는 그 거친 시절을 견디기 위해, 서로에게 조금 더 뜨거운 체온을 나누어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의성에는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 멋진 제복을 입고 나타나 동네를 떠들썩하게 했던 세화 형님 동생 이야기,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얽힌 긴 사연들... 그 이야기 보따리는 다음 편에 천천히 풀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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