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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기록 29: 고향 방문기 1] 오복상회, 그리고 아득했던 고향 가는 길추억 기록 2025. 12. 26. 21:03728x90반응형SMALL
기억의 조각: 아버지, 친구 상석이, 그리고 첫 홀로서기
1. 오복상회 주변의 사람들
아버지가 '오복상회'를 운영하시던 시절, 우리 집 주변은 늘 아버지의 고향인 경북 의성군 사람들로 북적였다. 친척이든 지인이든, 고향에서 올라온 분들은 약속이나 한 듯 우리 집 근처로 이사를 오곤 했다.
그중 내 기억에 선명히 남은 한 집이 있다. 나랑 동갑내기 친구였던 '오상석'이네 집이다. 우리 집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살았던 상석이는 나와 학교도 같이 다니던 친구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느 날 장티푸스를 앓은 후, 상석이는 조금 어눌해졌다. 병마와 싸우느라 힘들었는지 학교 공부도 잘 따라가지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어린 마음에도 참 아픈 일이었다.
상석이 아버지의 존함은 '오세정' 씨였다. 지금도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족보 따지는 일이 어린 나에게 참 곤혹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분은 나와 같은 '세' 자 항렬을 쓰셨다. 족보대로라면 나에게는 형님뻘이 되는 분이다. 하지만 아버지벌 되는 어른에게 감히 "형님"이라고 부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친척쯤 되는 분이라 예우는 해야겠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던 그 난처함이 지금도 기억난다.

2. 단 한 장의 편도 차비
나는 서울에서 자라 고향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학교 입학 무렵, 아버지가 나에게 엄청난 미션을 주셨다. 혼자 고향 의성에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아버지는 내 손에 딱 '편도 차비'만 쥐여주셨다. 왕복도 아니었다. "가라." 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가는 길에 차를 한 번이라도 잘못 타면 고향은커녕,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고아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그것은 일종의 시험이자, 남자가 되는 통과의례 같았다.
3. 멀고도 험한 여정
서울에서 의성군 단밀면 팔등동까지 가는 길은 어린 중학생에게 너무나 멀고 복잡했다. 먼저 청량리에서 통일호 기차를 탔다. 덜컹거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한참을 달려 구미(혹은 선산 인근 역)에 내렸다. 거기서 다시 선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고, 선산 터미널에서 단밀면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단밀면에서 최종 목적지인 '팔등동'으로 들어가는 버스는 하루에 고작 두 번 정도밖에 다니지 않는 귀한 차였다. 그 시간을 맞추기 위해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4. 할머니와 시계, 그리고 성장
우여곡절 끝에 팔등동 고향 집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어린 손자가 혼자서 그 먼 길을 찾아왔으니 얼마나 놀라셨을까.
그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고모가 살고 계셨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다며 고모는 입학 선물로 손목시계를 사주셨다. 내 손목에 채워진 그 시계를 보며, 나는 비로소 내가 진짜 중학생이 되었음을, 그리고 아버지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해 '어른'의 세계로 한 발짝 들어섰음을 실감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그 길은 단순히 지리적으로 먼 길이 아니었다. 서울 촌놈이 아버지의 뿌리를 찾아가는 길이었고, 두려움을 이겨내고 혼자서는 법을 배우는 인생의 첫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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