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 기록 24] 오복상회, 그리고 아물지 않은 기억추억 기록 2025. 12. 26. 06:54728x90반응형SMALL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그 상실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새어머니를 집으로 데리고 오셨다.
그때부터 집안은 무언가 잘못 돌아가기 시작했다. 엄마를 잃은 우리 남매들은 아직 슬픔 속에 잠겨 허우적대고 있는데, 아버지는 도대체 왜 그렇게 급하게 새어머니를 모시고 와야만 했을까? 어린 마음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정말로 집안은 시끄러웠다. 왜 그렇게 시끄러워야만 했는지,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려 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당시 막내 현미는 고작 다섯 살이었다. 아직 젖도 떼지 못한 어린아이였다. 생전의 어머니는 막내의 젖을 떼게 하려고 무진 애를 쓰셨던 기억이 난다. 그런 핏덩이를 두고 어머니는 가셨고, 그 빈자리에 낯선 여인이 들어온 것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잠시도 비워두고 싶지 않으셨던 걸까? 아니면 당장 집안을 돌볼 일손이 그토록 절실했던 것일까?
하지만 새어머니에게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시력이 형편없이 안 좋으셨던 것이다. 앞이 잘 보이지 않으니 집안 곳곳에서,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문제가 끊이질 않았다.
어느 날은 새어머니가 내게 도시락을 싸주셨다. 하지만 나는 그 도시락을 학교에 가져가지 않았다. 눈이 좋지 않으신 분이 싼 도시락이라, 내용물이 엉망일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였다면 얼마나 정성스럽게, 예쁘게 준비해 주셨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자 도저히 그 도시락을 들고 갈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도 집안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서로 섞이지 못하는 물과 기름처럼, 새어머니와 우리 사이, 그리고 아버지 사이에는 불화가 계속되었다.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새어머니는 아들을 출산하셨다. 이복동생 '세현'이가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그 인연도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 그 일련의 소동이 끝나고, 우리는 정들었던, 그러나 아픈 기억이 서린 '오복상회'를 떠나야 했다. 우리는 아랫마을 어느 집의 단칸방으로 이사했고, 그 좁은 방에서 아버지와 우리 오남매는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며 다시 살아가게 되었다.
반응형'추억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억 기록 26] 단칸방, 그리고 탈출구로서의 기계공고 (5) 2025.12.26 [추억 기록 25] 단칸방의 추억: 홀로 서기를 배운 그 좁은 부엌 (0) 2025.12.26 [추억 기록 23] 어머니의 마지막 봄을 기억하며 (3) 2025.12.26 [추억 기록 22] 얼음이 되어버린 기억: 외삼촌에 대한 회상 (4) 2025.12.25 [추억 기록 21] 구로공단 쪽방에서 만난 바다, 그리고 누나의 '해저 2만리' (1) 2025.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