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 기록 22] 얼음이 되어버린 기억: 외삼촌에 대한 회상추억 기록 2025. 12. 25. 22:41728x90반응형SMALL
1. 친구 같았던 그 시절의 온기
우리가 어릴 적, 우리 곁에는 외삼촌이 있었다. 고향에서 올라오신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삼촌은 조카인 우리 남매에게 삼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친구'에 가까운 존재였다.
당시 아버지가 사업을 하셨기에, 어머니는 친정 식구들을 살뜰히 챙기셨고 아마도 외할머니와 삼촌이 서울에 자리를 잡는 데에도 많은 지원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삼촌이 택시 운전을 하던 시절, 우리는 수시로 삼촌을 찾아갔고 삼촌 역시 우리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허물없이 지냈다. 그때의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벗이자 가족이었다.

2. 변화의 시작: 동원참치 회장님의 기사, 그리고 신촌
삼촌의 삶에 볕이 들기 시작한 건, 그가 동원참치 회장님의 수행 기사로 들어가면서부터였던 것 같다.(확실하지 않은 기억) 안정적인 직장을 얻은 삼촌은 결혼을 했고, 살림살이도 눈에 띄게 나아졌다. 삼촌은 신촌으로 이사를 했고,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다. 큰애의 이름은 '황중영'이었다.
나와 현자 누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삼촌과의 끈끈함을 믿었기에, 신촌의 새집으로 삼촌을 찾아가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3. 그날의 싸늘함, 관계의 결빙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 집 가세가 기울어 조금 힘겨웠던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자 누나와 나는 여느 때처럼 삼촌을 찾아갔다. 하지만 우리를 맞이한 건 예전의 살가움이 아니었다.
외숙모의 눈빛과 말투에는 숨길 수 없는 '싸늘함'이 서려 있었다. 마치 가난해진 조카들이 혹여나 짐이 될까 경계하는 듯한 그 차가운 공기는 거실을 가득 메웠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삼촌의 태도였다. 친구 같던 삼촌은 온데간데없고, 철저히 '사무적'인 태도로 우리를 대했다.
그날, 현자 누나와 나는 집을 나오며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삼촌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4. 지워버린 이름, 남겨진 얼음
우리는 그렇게 관계를 끊었다. 마치 가위로 도려내듯, 삼촌이라는 존재를 삶에서 지워버렸다. 세월이 흘러 사촌 동생 중영이가 결혼할 때, 예의상 참석한 결혼식이 유일한 재회였다.
훗날 외삼촌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내 머릿속의 기억은 이미 지워진 뒤였다. 슬픔보다는 그날 신촌에서 느꼈던 외숙모의 싸늘함과 삼촌의 사무적인 표정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토록 친밀했던 혈육의 정이 돈과 상황 앞에서 얼마나 허무하게 식어버릴 수 있는지. 내 머릿속에는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녹지 않는 '얼음'처럼 박혀 있다.
반응형'추억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억 기록 24] 오복상회, 그리고 아물지 않은 기억 (1) 2025.12.26 [추억 기록 23] 어머니의 마지막 봄을 기억하며 (3) 2025.12.26 [추억 기록 21] 구로공단 쪽방에서 만난 바다, 그리고 누나의 '해저 2만리' (1) 2025.12.25 [추억 기록 20]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았던, 그 시절의 '큰집' (2) 2025.12.25 [추억 기록19] 밤하늘의 별처럼 우리를 비춰주던 사람, 나의 큰누나 (3) 2025.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