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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기록 5] 불방망이가 만들어낸 아이러니: 나는 왜 물리를 잘하게 되었나추억 기록 2025. 12. 24. 07:11728x90반응형SMALL
"자, 22번."
지금도 숫자 22를 보면 가끔 등골이 서늘해질 때가 있다. 중학교 시절, 나의 출석 번호는 22번이었다.
그 시절 과학 과목은 '물상'이라고 불렸다. 물상 선생님에게는 기이한 법칙이 하나 있었는데, 수업 시간이 되면 무조건 반 번호 22번을 호명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출석을 부르는 게 아니었다. 지난 시간에 배운 내용, 그리고 오늘 배워야 할 내용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셨다.

대답을 못 하거나 틀리면? 그 대가는 혹독했다. 선생님의 손에 들린 몽둥이, 우리끼리는 '불방망이'라 불렀던 그것이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매시간이 나에게는 공포의 도가니였다. 그 수업 시간이 다가오는 것 자체가 숨이 막히는 형벌과도 같았다.
가장 잊히지 않는 기억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날이었다. 당시 우리 집은 우면산 자락 근처에 있었다. 밤새 내린 비로 수해가 났고, 자고 있던 방 안까지 물이 차올랐다. 가재도구가 둥둥 떠다니는 아수라장 속에서 간신히 몸을 피했다.
보통의 학생이라면 학교를 결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난리 통에도 젖은 교복을 꿰입고, 물에 퉁퉁 불어버린 교과서를 가방에 쑤셔 넣고 학교로 향했다. 어린 마음에 학교는 가야 한다는 의무감이었는지, 아니면 집에 있는 것이 더 무서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도착한 학교, 그리고 다시 돌아온 물상 시간. 선생님은 어김없이 "22번"을 불렀다.
나는 젖은 책을 펴 들고 일어섰다. 내 꼴을 보면 알 법도 했을 텐데. 집이 물에 잠겨 밤새 한숨도 못 잤다는 것을, 젖은 교복에서 나는 눅눅한 냄새가 말해주고 있었을 텐데. 그날도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이 막히자 여지없이 불방망이가 날아들었다.
서러웠다. 아팠고, 힘들었다. 그 시절은 참 가난했고 환경도 열악했다. 그 매질이 원망스러워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방법이 없었다. 맞지 않기 위해, 그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이를 악물고 물상 책을 파고들었다. 이해가 되든 안 되든 달달 외우고 또 보았다. 생존을 위한 공부였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공포심으로 시작된 공부가 시간이 지나자 나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가서도 물리와 화학 과목은 나에게 너무나 쉬웠다. 맞지 않으려고 다져놓은 기초가 어찌나 튼튼했는지, 다른 동기들이 어려워하는 전공 기초 과목들이 나에게는 비교적 수월하게 느껴졌다. 덕분에 학업을 마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그 단단한 기초. 이걸 그 선생님께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
물리를 전공하게 된 거창한 꿈이나 낭만적인 동기는 없었다. 그저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을 뿐이다. 가끔 옛 생각이 날 때면 젖은 교복을 입고 떨고 있던 열다섯 살의 나를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묻고 싶다.
"그때의 너는, 훗날 네가 물리를 가장 잘하게 될 줄 알았을까?"
참 힘든 시절이었지만, 그 맵디매운 기억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뼈대가 되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내 삶의 아이러니이자, 훈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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