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기후 뒤에 숨은 서늘한 현실 도미니카에서 제가 관리하던 또 다른 공장은 보나오 지역에 있었습니다.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주를 이루던 뜨거운 바니와 달리, 보나오는 지대가 높아 기후가 선선하고 쾌적했습니다. 이곳은 스페인계 후손들이 주로 정착해 살던 곳이라 사람들의 외모 또한 유럽인의 특징을 많이 띠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후와 외모의 차이보다 저를 더 긴장하게 만든 것은 그곳의 거친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남미 지역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명확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오늘만을 살아가는 듯 보였고, 그 이면에는 치명적인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7년 만에 돌아온 비보, 그리고 경계심 한번은 현지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선발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공장 설립을 위해 앞장서 일했던 분이 7년 뒤 다시 돌아왔을 때, 에이즈(AIDS)에 걸려 있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만큼 현지의 성 문화는 개방적이었고, 그에 따른 위험은 소리 없이 이방인들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뒤로 저는 현지에서의 여행이나 외부 활동이 더욱 망설여졌습니다. 빼앗긴 침상을 되찾기 위해 온 이곳에서, 몸마저 상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저를 더욱 스스로 가두게 만들었습니다.
알다가도 모를 문화: 첫 데이트의 입회인 재미있는 사실은 그렇게 개방적인 문화 속에서도 이해하기 힘든 보수성이 공존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현지인들이 처음 데이트를 할 때는 반드시 부모님이 입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쪽에서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방종한 삶이 흐르는데, 또 한쪽에서는 부모의 감시 아래 첫 만남을 갖는 엄격함이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시련 속에서 지켜낸 나만의 중심 이런 알다가도 모를 문화적 충격 속에서 저는 더욱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가끔 꿈속에서 느꼈던 감옥 같은 고립감은, 어쩌면 이런 위험하고 낯선 환경으로부터 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만든 성벽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거친 환경 속에서 내일 없는 듯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저는 오히려 가족이 기다리는 한국으로 건강하게 돌아가야 한다는 목표를 더욱 분명히 했습니다. 시련이 저를 이 먼 땅으로 보냈지만, 그곳의 위험과 낯섦은 저를 더욱 단단하고 철저한 관리자로 성장시키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