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 기록47]부산에서 만난 낡은 사진첩, 그리고 밥솥의 추억추억 기록 2026. 1. 25. 16:54
지난 토요일, 집안일로 급히 부산을 찾았습니다. 일을 마친 뒤 정갈해진 마음으로 앉아 옛 사진첩을 한 장씩 넘겨보았습니다. 먼지 앉은 종이 냄새와 함께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흔적들이 쏟아져 나오더군요.
그중 유독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국민학교 졸업식 사진이었습니다. 지금의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라 불리던 그 시절, 사진 속 저는 참 앳된 모습이었습니다.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새어머니를 맞이하셨던 아버지, 그리고 그 졸업식 자리에 와주셨던 새어머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몇 년 전 그분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먹먹함이 다시금 밀려왔습니다. 어린 마음에는 다 이해하지 못했을 그 시절의 풍경이 이제야 어렴풋이 이해가 가는 듯합니다.

국민학교 졸업사진 사진 속에는 정겨운 얼굴들이 참 많았습니다. 다정한 누나와 엄하셨지만 따뜻했던 담임 선생님, 그리고 제 단짝이었던 남승호와 승호 어머니의 모습까지. 졸업 후 연락이 끊긴 지 수십 년이 흘렀는데, 승호는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요? 사진을 매개로 소식이라도 닿을 수 있다면 얼마나 반가울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문득 그날의 재미있는 기억 하나가 떠올라 혼자 헛웃음을 지었습니다. 바로 개근상에 대한 기억입니다. 6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 나갔던 저에게 주어진 상장은 무척 자랑스러웠지요. 그런데 함께 받은 부상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름 아닌 밥솥이었거든요.
요즘이야 흔한 가전제품이지만, 그 시절 개근상으로 밥솥을 받아 들고 집으로 향하던 제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뿌듯했을지 상상이 가시나요? 아마도 성실하게 학교에 다닌 덕분에 온 가족이 따뜻한 밥을 먹게 되었다는 그런 깊은 뜻이 담겨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온 일상이었지만, 고향 부산에서 만난 낡은 사진 한 장이 잠시 숨을 고르게 해 주었습니다. 빡빡이 머리에 밥솥 하나에도 행복해하던 그 시절의 순수함과 성실함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밤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개근상으로 특별한 선물을 받았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사진첩 속에서 우연히 그리운 얼굴을 마주한 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추억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 나이가 얼마냐"는 물음에 답하며 (22) 2026.02.12 [추억 기록 48] 빛바랜 졸업 사진 속에서 만난 그리운 얼굴들 (50) 2026.01.26 [추억 기록 46]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상상, 그리고 지금의 나 (50) 2026.01.15 [추억 기록 45] 1985년, 강원도의 산과 변치 않는 전우들 (12) 2026.01.07 [추억 기록 44] 삐그덕대던 3류 계산기의 비애, 그리고 카시오의 추억 (14) 2026.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