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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기록 8] 5공화국 그해 여름, 나의 '노가다' 3부작추억 기록 2025. 12. 24. 21:00728x90반응형SMALL
대학에 갓 입학했을 무렵, 세상은 5공화국이라는 서슬 퍼런 시대의 한복판이었다. 캠퍼스의 낭만보다는 최루탄 냄새가, 여유보다는 생존이 더 절박했던 시절. 방학이 되었지만 주머니는 가벼웠고, 할 만한 아르바이트를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렇게 나의 무모하고도 고단했던 '여름 아르바이트 순례'가 시작됐다.

1. 과천의 5층 아파트와 5,500원
처음 나를 이끈 건 동네 형, 주영학 형이었다. 현장 경험이 많은 형이 "과천에 자리가 났다"며 나를 불렀다. 5층짜리 아파트 건설 현장이었다. 내게 주어진 임무는 '배관공사 보조'. 거창해 보였지만 실상은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까지 무거운 배관 파이프를 짊어지고 나르는 일이었다.
어깨를 파고드는 쇳덩이의 무게,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 그나마 학생이라고 인부 아저씨들이 일을 살살 시켜주셨지만, 책상물림이었던 내게는 그마저도 벅찼다. 일당 5,000원, 차비 500원. 내 노동의 대가는 딱 그만큼이었다. 너무 힘들어 며칠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었지만, 그 5,500원의 무게감만은 오래도록 남았다.
2. 방배동의 농약 냄새와 어지러움
몸을 좀 추스르자 다시 돈 벌 생각이 간절했다. 이번엔 '머리'를 써보자 싶었다. 부촌인 방배동 단독주택을 돌며 정원에 농약을 쳐주는 일이었다. 친구 차영훈을 꼬드겼다. "영훈아, 이거 된다. 한 집에 5,000원씩 받자."
나는 영업을 뛰고 친구와 함께 약을 쳤다. 마스크도 없이, 농약에 대한 지식도 없이 덤벼든 게 화근이었다. 독한 약 기운을 온몸으로 들이마시니 머리가 핑 돌고 속이 메스꺼웠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이러다 사람 잡겠다 싶어 결국 도망치듯 그만두었다. 돈을 벌기는커녕 몸만 상한 채였다.
그때 나와 함께 땀 흘렸던 친구, 차영훈. 녀석은 한창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들었다. 먹고사는 게 바빠 마지막 가는 길조차 가보지 못한 것이 못내 가슴에 맺힌다. 철없던 시절, 농약 냄새를 참아가며 함께 방배동 언덕을 오르던 그해 여름. 그 뜨거웠던 기억이 이제는 하늘에 있는 친구와 나눈 가장 생생한 추억으로 남았다.
3. 벽돌 공장의 뙤약볕, 그리고 허무함
농약 독이 빠지고 몸이 좀 낫자, 조바심에 집 근처 벽돌 공장을 찾았다. 이번엔 상차 작업이었다. 한여름 땡볕 아래서 달궈질 대로 달궈진 벽돌을 트럭에 싣는 일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땀을 비 오듯 쏟으며 버텼지만, 손에 쥐어진 일당을 보고 나는 무너졌다. 노동의 강도에 비해 너무나 형편없는 액수. "이 고생을 하고 고작..." 허탈함이 밀려왔다. 더 이상 일을 할 의욕조차 사라졌다.
그해 여름, 나는 그렇게 세 번의 도전 끝에 빈손으로 남았다. 돈은 벌지 못했고, 남은 건 지독한 고생의 기억뿐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요령 없이 온몸으로 부딪혔던 그 투박한 시간들이야말로 가장 뜨거웠던 내 청춘의 한 페이지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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