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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관계] 은퇴 후, 부산으로 내려가는 나의 '밥 친구' 리스트은퇴를 준비합니다. 2025. 12. 21. 22:05728x90반응형SMALL
"식사하러 가시죠."
평일 점심시간, 저의 메뉴는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화려한 호텔 식당이나 고급 일식집을 떠올리셨다면 오산입니다. 저는 십중팔구 **'회사 구내식당'**으로 향합니다.

제조업 공장의 하루는 시계태엽처럼 돌아갑니다. 점심시간도 예외는 아닙니다. 주로 재경팀 직원들과 함께 정해진 루틴대로 식판을 받거나, 업무가 늦어지면 혼자 구석 자리에서 후다닥 해결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제가 구내식당을 고집하는 현실적인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체중 관리'**입니다. 저는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체질이라, 기름진 외부 식당 음식은 쥐약입니다. (웃음) 그러니 저에게 직장에서의 점심이란, 즐거움이라기보다는 오후 업무를 버티기 위한 '연료 주입'이나 철저한 '자기관리'의 시간에 가깝습니다.
그러다 문득, 밍밍한 저염식 반찬을 씹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퇴하고 나면, 나는 누구와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오늘은 은퇴 후 제가 살게 될 **'부산'**에서, 칼로리 걱정 잠시 내려놓고 마음 편히 마주 앉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삼식이' 걱정? 저는 '부산행' 티켓을 끊습니다
은퇴한 남편들이 집에만 있으면서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 아내가 가장 무서워한다는, 이른바 '삼식이' 이야기. 웃어넘기기엔 꽤 뼈아픈 농담입니다.
저도 그 '삼식이'가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제2의 고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은퇴 후 부산으로 내려갈 계획을 세워두었습니다. 낯선 곳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그곳에 이미 저를 기다려주는 소중한 '밥 친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든든한 부산 밥 친구 리스트
1. 옛 전우들: 컨설팅 회사 동료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들은 예전 컨설팅 회사에서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입니다. 치열하게 일하며 밤을 새우고,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던 '전우애'가 있는 사이죠. 지금도 가끔 부산에 내려갈 때마다 연락해서 밥도 먹고 차도 한잔 마시는 사이입니다. 이해관계가 얽힌 딱딱한 비즈니스 대화 대신, "요즘 건강은 어때?", "그때 참 힘들었지" 하며 허심탄회하게 웃을 수 있는 이들이 있어 부산행이 설렙니다.
2. 마음의 안식처: 동래제일침례교회 교우들 두 번째는 저의 영적 고향이 되어줄 교회 식구들입니다. 예전에 부산에 살 때 다녔던 '동래제일침례교회'에 다시 등록할 생각입니다. 일요일 예배가 끝나고 교회 식당에서, 혹은 근처 국밥집에서 교우들과 나누는 식사는 단순한 끼니 때우기가 아닙니다. 같은 믿음을 공유하고 서로의 삶을 위해 기도해주는 그 시간들이 저의 은퇴 생활을 영적으로 단단하게 지탱해 줄 것입니다.
3. 나의 가장 확실한 VIP: 사랑하는 딸 세 번째는 제가 부산행을 택한 가장 큰 사심(私心), 바로 딸입니다. 현재 제 딸은 부산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타지에서 고생하는 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는 제가 곁으로 갑니다. 평소엔 살찔까 봐 피했던 파스타나 피자도, 딸이 "아빠, 이거 맛있어!" 하며 권하면 무장해제될 것 같습니다. 점심시간에 잠깐 짬을 낸 딸을 불러내어 맛있는 것을 사주고, 딸의 웃는 모습을 보는 것. 아마 제 퇴직금의 상당 부분은 우리 딸과의 맛집 탐방에 쓰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4. 영원한 내 편: 동갑내기 아내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사람을 잊을 뻔했군요. 바로 저의 아내입니다. 물론 지금도 가끔 외식은 하지만, 돌이켜보면 제가 온전히 '무장해제'하고 밥을 먹은 적이 얼마나 될까 싶습니다. 회사 일 걱정에, 가장이라는 무게감 때문에 밥상머리에서도 저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은퇴 후 부산에서는 그 무게를 다 내려놓으려 합니다. 우리는 동갑내기 친구니까요. 투닥거리며 싸울 때도 있겠지만, 결국 제 마지막 순간까지 따뜻한 밥상을 함께할 유일한 짝꿍은 아내뿐입니다. 부산 바닷가 횟집에서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여보, 그동안 우리 참 열심히 살았다" 서로 어깨를 토닥여주는 저녁 식사. 그것이야말로 제가 꿈꾸는 가장 행복한 은퇴의 풍경입니다.
맛있는 인생 2막을 기대하며
은퇴 준비는 단순히 통장 잔고를 채우는 일이 아닙니다. '누구와 밥을 먹을 것인가'를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구내식당에서 식판을 비우는 '루틴한 일상'에서 벗어나, 소중한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식사하는 '설레는 일상'으로. 비록 체중계 눈금은 조금 올라갈지 몰라도, 행복 지수는 훨씬 더 올라가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은퇴 후 식탁 앞에는 누가 앉아 있나요? 지금부터라도 다이어리의 빈칸을 '업무'가 아닌 '사람'으로 채워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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