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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학업] 60대 중반 임원이 주말마다 학생이 되는 이유 (방통대 영문학과)은퇴를 준비합니다. 2025. 12. 17. 07:24728x90반응형SMALL
"부*장님, 주말에 골프 안 치세요?"

월요일 아침, 가끔 까마득한 후배들이 묻곤 합니다. 보통 제 나이 또래, 그리고 임원 직급의 사람들이 주말을 보내는 방식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겠죠.
사실 저도 골프를 쳐보긴 했습니다. 젊은 시절 해외 근무할 때, 비즈니스에 필요하다며 반강제로 골프채를 잡았었죠. 그런데 해보니 알겠더군요. 저는 확실한 '몸치'였습니다. (웃음) 남들은 레슨 몇 번 받으면 폼이 나온다는데, 저는 아무리 연습해도 실력이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귀국하자마자 미련 없이 골프백을 창고에 넣어뒀습니다. 대신 저는 주말마다 골프채 대신 '볼펜'을 잡습니다.
"나? 숙제하느라 바빴어. 기말고사가 코앞이거든."
저는 평일에는 자동차 부품 회사의 임원으로 살지만, 주말에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생으로 변신합니다. 오늘은 예순 중반의 나이에, 그것도 은퇴를 코앞에 두고 굳이 '사서 고생'을 하는 저의 공부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50대의 공부: 현장을 지키기 위한 '의무감'
사실 제가 주말마다 책상에 앉은 건 꽤 오래된 일입니다. 50대 중반이었던 2019년부터 2021년까지는 방송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밟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대학원 졸업 후에는 품질경영기사 자격증을 땄고, 곧이어 산업안전기사 자격증까지 취득했습니다. 임원이나 되어서 기술 자격증 공부를 한다니 주변에서 의아해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저에게는 절실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생산 현장에서는 예기치 못한 안전 문제가 발생하곤 합니다. 현장을 책임지는 임원으로서, 제가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제대로 된 관리도, 직원들의 안전도 담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뭘 알아야 관리를 하지." 그 생각 하나로 머리를 싸매고 법령을 외우고 수식을 풀었습니다. 그때의 공부는 회사와 직원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생존의 공부'였습니다.60대의 공부: 나를 채우기 위한 '설렘'
그렇게 치열하게 기능적인 지식으로 머리를 채우고 나니, 환갑이 넘어 은퇴를 바라보는 시점이 되어서는 또 다른 갈증이 찾아왔습니다.
'이제는 의무감이 아니라, 진짜 내 마음이 원하는 공부를 해볼까?'
평생을 0.0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숫자와 효율의 세계에서 살았으니, 인생 2막은 조금 다른 결의 지식을 담고 싶었습니다. 기능적인 언어(Business English)가 아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언어(Literature)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결정적인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한 연세 지긋한 집사님을 뵈었는데, 영어 성경을 펼쳐놓고 너무나 편안하게 읽고 계시더군요. 사전을 찾는 것도 아니고, 더듬거리는 것도 없이 마치 한글 책을 읽듯 술술 읽어 내려가시는 모습이 제 눈에는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 나도 은퇴 후에는 저렇게 되고 싶다. 번역본이 아니라 원어로 된 성경을 막힘없이 읽으며 깊이 있게 묵상해보고 싶다.'
그 소박하지만 강렬했던 '로망'이 제가 품질경영기사 자격증을 책장에 꽂아두고, 다시 늦깍이로 방통대 영문학과 입학원서를 쓴 진짜 이유입니다.현실은 '낭만'보다 '체력전'
물론, 마음은 낭만인데 현실은 체력전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정말 힘듭니다.
금요일 저녁까지 보고 자료를 챙기고 퇴근하면, 몸은 이미 녹초가 되어 있습니다. 주말 아침, 책상에 앉아 깨알 같은 영어 원서를 펼치면 글자가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튕겨 나가는 기분입니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기억력: 20대 때는 한 번 보면 외워지던 단어들이, 지금은 열 번을 써도 다음 날이면 가물가물합니다.
- 노안과의 싸움: 돋보기를 썼다 벗었다 하며 깨알 같은 지문을 해석하다 보면 눈이 금세 시려옵니다.
- 절대적인 시간 부족: 경조사 챙기랴, 회사 비상 대기하랴, 온전히 공부에 집중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전쟁입니다.
시험 기간이 되면 '이 나이에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펴는 이유
하지만 이 고단함을 상쇄하고도 남는 '짜릿함'이 있습니다.
MBA나 기사 공부를 할 때는 "정답이 무엇인가?", "법규에 맞는가?"를 따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영문학 수업에서는 정답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의 고뇌를 이해하고, 시구(詩句)에 담긴 아름다움을 느끼면 그만입니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제 머리가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입니다. 평생 업무에 치여 건조해진 제 마음에, 문학은 뒤늦게 만난 '단비' 같습니다. 회사 임원 명함을 내려놓고 온전히 '학생'이 되어 배우는 그 시간만큼은, 나이도 직급도 잊은 채 순수한 열정만 남습니다.은퇴 준비? 아니, '나'를 찾는 공부
누군가는 퇴직 준비를 위해 또 다른 자격증을 따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도 해봤으니 그 중요성을 잘 압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의 이 인문학 공부가 저의 은퇴 후 삶을 지탱해 줄 단단한 '정신적 근육'을 만들어주고 있다고 믿습니다.
은퇴 후, 저는 서재에 앉아 원서로 된 소설을 읽거나 영어 성경을 묵상하며 오후를 보낼 겁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저처럼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봉사도 하고 싶습니다.
혹시 지금 "이 나이에 무슨 공부야..." 하며 망설이는 분이 계신가요? 걱정 마세요. 머리는 좀 굳었을지 몰라도, 인생의 경험으로 행간을 읽어내는 능력은 우리가 훨씬 뛰어납니다. 골프 실력은 안 늘어도, 인생을 읽는 눈은 깊어지니까요.
저는 이번 주말에도 학생이 됩니다. 여러분의 주말은 어떤 모습인가요?반응형'은퇴를 준비합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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