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추억 기록 43] 내 상사의 방에는 카세트테이프가 차렷 자세로 서 있었다
    추억 기록 2026. 1. 1. 08:59
    728x90
    반응형
    SMALL

    1985년에서 1987년 사이, 내가 소위/중위 계급장을 달고 교육장교로 복무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 돌이켜보면 낭만이라는 단어로 포장될 수도 있겠지만, 그 시절 나에게 군대는 매일이 살얼음판 같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중심에는 바로 나의 직속 상관, 작전장교(대위)가 있었다.

    [오타 하나도 용납되지 않던 타자기의 공포]

    나는 본래 성격이 조금은 유연한 편이다. 좋게 말하면 융통성이 있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가끔은 이 정도면 됐지 하고 대충 넘어가는 기질이 있었다. 하지만 내 상사는 달랐다. 작전장교였던 그는 그야말로 완벽주의 그 자체였다. 업무에 있어서는 바늘 하나 꽂을 틈도 없이 치밀했고, 모든 일처리는 철두철미했다.

    지금이야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고 틀리면 백스페이스 키 한 번이면 해결되지만, 그때는 타자기 시절이었다. 탁, 탁, 탁... 타자기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사무실을 채우던 그 시절, 보고서 작성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작전장교님은 글자 하나가 틀리는 것은 물론, 오와 열이 조금만 맞지 않아도 가차 없이 반려를 놓았다. 타자기로 문서를 작성하다 오타가 나면? 수정테이프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처음부터 다시 종이를 끼우고 쳐야 했다. 다시 해와. 그 짧은 한마디가 들릴 때마다 눈앞이 캄캄해지곤 했다.

    나 때문에 고생한 건 내 부하들이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김 병장(김경수?) 같은 친구들이 나 대신 타자기를 치고, 종이를 구겨 버리고 다시 끼우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어느 날 비품 창고 구석에 처박혀 쪽잠을 자고 있는 부하의 모습을 보며 소위였던 나는 깊은 미안함과 안쓰러움을 느껴야 했다.

    [기절할 뻔했던 관사 심부름]

    어느 날이었다. 과장님(작전장교)이 나에게 본인 집에 가서 무엇을 좀 가져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관사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정말로 기절할 뻔했다.

    남자 혼자 사는 방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방바닥에는 먼지 하나 보이지 않았고, 책상 위 물건들은 자로 잰 듯 반듯했다. 나의 시선을 가장 강하게 붙잡은 건 바로 카세트테이프였다.

    책꽂이에 꽂힌 테이프들이 마치 사열을 받는 병사들처럼 정확하게 오와 열을 맞추고 있었다. 높이, 간격, 제목의 방향까지.... 소름이 돋았다.

    그 당시 나의 상사

    아... 부대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이분은 뼈속까지 이런 사람이었구나.

    그 밑에서 숨 막혀 했던 나, 그리고 창고에서 쪽잠을 자던 병사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그 완벽함의 무게를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전역 후 도착한 꾹꾹 눌러 쓴 편지들]

    그렇게 힘들게 모시던 상사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부대를 떠나고 난 뒤 가장 따뜻하게 나를 챙겨준 사람도 바로 그분이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분이 보내주신 편지를 보관하고 있다.

    스마트폰도 없던 1980년대,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날아온 편지에는 펜으로 꾹꾹 눌러 쓴 그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세웅아! 보고 싶구나... 언제 만나면 삼겹살이라도 놓고 이야기하자구나. 밤늦게라도 생각나면 전화해라. 화천 6228번. 혼자 있더라도 굳세게 살아야 한다. 너의 건강과 무운장구를 위해 주님께 기도할께.

    편지 속 그는 더 이상 나를 쪼아대던 무서운 작전장교가 아니었다. 밥은 제때 먹고 다니는지, 영어 공부는 하고 있는지 걱정해 주는... 영락없는 친형의 모습이었다. 야, 똑바로 안 해?라고 호통치던 목소리 뒤에, 실은 세웅아, 밥은 먹었냐? 굳세게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그 속정 깊은 마음을 그땐 왜 몰랐을까.

    김병장이 그려준 내 모습

    [호랑이 선생님은 목사님이 되셨다]

    전역 후 사회에 나와 치열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는 문득문득 그분을 떠올렸다. 한 기업의 임원이 되기까지 수많은 위기와 난관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1985년의 내가 떠올랐다. 그분 밑에서 뼛속까지 시리게 배웠던 일머리와 치밀함 덕분에 나는 정글 같은 사회생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그분이 사무치게 그리워져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그리고 들려온 소식은 놀라웠다. 그 서슬 퍼렇던 작전장교님이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이 되어 계셨다. 칼 같던 군인이 사람을 살리는 목회자가 된 것이다.

    목사님이 되신 나의 옛 과장님은 지금도 나를 잊지 않으셨다. 40년 전 편지에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라고 적으셨던 그 약속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매일 아침, 내 휴대폰에는 그분이 보내주시는 성경 구절이 도착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도착한 그 짧은 문자 메시지 속에서 나는 20대 시절 나를 질책하고 챙겨주던 그분의 따뜻한 온기를 느낀다.

    과장님, 아니 목사님. 당신 덕분에 저는 밥벌이 든든히 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그때는 그토록 무서웠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오늘 보내주신 말씀도 감사히 읽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오늘 보내주신 말씀

     

    반응형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