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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기록 41] 마스터 수학, 그리고 아버지라는 난제(難題)추억 기록 2025. 12. 31. 07:30728x90반응형SMALL
학창 시절, 나는 유난히 내성적인 아이였다. 말수도 적고 낯을 많이 가리다 보니 주변에 친구가 별로 없었다. 그 시절, 나와 닮은 그림자 하나가 내 곁에 있었다.

그 친구는 참 명석했다. 우리는 중학교 때 당시 가장 어렵기로 소문난 '마스터 수학'이라는 책을 붙들고 씨름하곤 했다. 남들은 쳐다보기도 싫어할 난해한 문제들이었지만, 우리에겐 그 시간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고 정답을 맞혔을 때의 그 짜릿함. 우리는 그 희열을 공유하며 세상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다.
우리가 그토록 수학에 매달렸던 건, 어쩌면 현실의 문제를 잊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수학을 좋아한다'는 것 외에 또 하나의 아픈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아버지'라는 존재였다. 나의 아버지는 재혼을 하시며 가정에 복잡한 공기를 들여오셨고, 나는 그 안에서 꽤나 힘든 사춘기를 보냈다. 친구의 상황은 더 열악했다. 어머니도 안 계신데, 아버지는 매일 술에 취해 가정을 돌보지 않으셨다.
"우리 아버지는 왜 이럴까."
우리는 수학 문제를 풀다 막히면 머리를 맞대었듯, 답이 보이지 않는 가정사 때문에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끈끈해졌다. 그 시절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이해자였고, 도피처였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된 우리는 다시 마주 앉았다. 술잔을 기울이며 옛이야기를 나누던 중, 친구는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술만 안 드셨어도..." "그때 아버지가 나를 좀 더 챙겨줬더라면..."
친구의 말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풀리지 않은 회한이 깊게 묻어 있었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 명석했던 친구가 겪었을 외로움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하지만 문득, 내 마음은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역시 어릴 적엔 아버지를 참 많이 미워했다. 원망도 했고, 왜 내게 이런 환경을 주었나 화도 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도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보니, 그 감정의 색깔이 조금씩 바래져 갔다.
미움은 나를 갉아먹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일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를 있는 그대로, 시대가 만든 불완전한 한 인간으로 이해하고 감싸주려 노력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내 자녀들' 때문이다. 내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품고 산다면, 그 부정적인 감정의 사슬이 내 아이들에게도 이어질 것만 같았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원망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대신 '이해하고 포용하는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다.
수학 문제에는 명확한 하나의 정답이 있었지만, 인생이라는 난제에는 정해진 답이 없는 것 같다. 여전히 아버지를 원망하며 과거의 아픔을 곱씹는 친구도, 아버지를 용서하고 그 고리를 끊어내려 노력하는 나도, 각자의 방식으로 그 시절의 상처를 견뎌내고 있는 것이겠지.
다만, 그 똑똑했던 내 친구가 이제는 그 무거운 마음의 짐을 조금은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그 어려웠던 '마스터 수학'의 마지막 장을 결국 넘겼던 것처럼, 아버지라는 긴 문제풀이도 이제 그만 마침표를 찍고 편안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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