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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억 기록 18] 미닫이문 달린 텔레비전과 오복상회의 밤
    추억 기록 2025. 12. 25.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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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버지는 동네 통장이셨다. 한자를 많이 아셔서 동네 어른들의 편지를 대필해 주시기도 하고, 붓글씨로 무언가를 적어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버지는 우리 동네의 중심이었던 '오복상회'를 운영하셨다. 쌀이며 잡화며 없는 게 없던 그곳은 동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말 그대로 마을의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 집은 동네에서 가장 먼저 전기가 들어왔고, 머지않아 동네 최초로 텔레비전을 들여놓은 집이 되었다.

    그때 그 텔레비전은 지금처럼 얇은 판이 아니었다. 마치 고급 가구처럼 다리가 달려 있었고, 화면 앞에는 '드르륵' 하고 열고 닫을 수 있는 미닫이문(도어)이 달려 있었다. 평소에는 문을 닫아두어 귀한 가구처럼 모셔두었다가, 방송이 시작될 때면 문을 양옆으로 활짝 열어젖히곤 했다.

    저녁 7시가 되고 9시가 되면, 오복상회 안채 마루는 동네 극장으로 변했다. 밥숟가락을 놓기 무섭게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우리 집으로 모여들었다. 좁은 마루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면, 드디어 브라운관 속에 세상이 펼쳐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드라마 <여로>였다. 영구의 바보스러운 연기에 배꼽을 잡고 웃다가도, 기구한 운명 앞에서는 아주머니들이 눈물을 훔치느라 마루가 훌쩍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드라마가 끝나고 뉴스가 지나가면, 남자 어른들의 시간인 레슬링 경기가 이어졌다.

    "박치기! 박치기!"

    김일 선수가 나오는 날이면 동네가 떠나갈 듯했다. 특히 한일전이라도 벌어지는 날에는 그 열기가 월드컵 저리 가라였다. 반칙을 일삼는 상대 선수를 김일 선수가 시원한 박치기 한 방으로 쓰러뜨릴 때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그 시절 김일 선수의 경기는 무조건 이기는 경기였고, 우리 모두에게 통쾌한 승리였다.

    그렇게 텔레비전 앞은 웃음과 함성으로 가득 찬 축제의 장이었지만, 딱 한 사람, 현자 누나는 달랐다.

    "아, 좀 조용히 좀 해! 텔레비전 소리 때문에 공부를 할 수가 없잖아!"

    즐거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누나의 짜증 섞인 고함이 방문 너머로 들려오곤 했다. 누나는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수재였다. 사람들은 누나를 보고 '악바리'라고 불렀다. 시끌벅적한 텔레비전 소리를 뚫고 기어이 집중해서 문제를 풀고야 마는 그 독함. 공부 잘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텔레비전 불빛에 홀려 울고 웃던 그 밤, 방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자신만의 싸움을 하던 누나.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열어준 문명(TV)의 혜택을 누리던 우리와, 스스로 미래의 문을 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누나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진다.

    오복상회의 미닫이문 텔레비전, 김일 선수의 박치기, 그리고 악바리 누나의 고함소리... 그 시끌벅적하고 정겨웠던 저녁 풍경들은 이제 빛바랜 사진처럼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텔레비전은 손바닥만 한 기계 속으로 들어왔고, 우리는 각자의 방에서 외롭게 화면을 본다. 가끔은 문을 '드르륵' 열면 온 동네 사람들의 온기가 쏟아져 나오던, 그 투박한 가구형 텔레비전이 사무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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