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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와 새로운 출발, 그리고 내가 찾은 존재의 이유카테고리 없음 2026. 9. 9. 13:09
평생을 직장인이라는 이름으로 치열하게 달렸다.
현장을 누비고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며 늘 조직의 중심에 서 있던 시간들이 지나고, 정든 전 직장을 떠나 은퇴를 맞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의 권유로 작은 규모의 새로운 회사에 발을 디뎠다.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사뭇 달랐다. 이미 돌아가고 있는 작은 조직 안에서 내가 당장 파고들어 기여할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마치 아무도 찾지 않는 방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기분, 사실상 내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맥이 풀리고 헛헛한 마음이 불쑥 찾아오곤 했다.
평생을 뜨겁게 일해왔는데, 여기서 이렇게 멈춰 서야 하는 걸까.
그 허탈함 속에서 주변을 다시 찬찬히 둘러보았다. 작은 소기업이다 보니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다.연구원과 직원들은 각자의 업무를 해내느라 바빴지만, 이를 뒷받침해 줄 인프라는 전무했다.
그 순간 생각이 번쩍 스쳤다.
‘시스템이 없다면, 내가 만들어 주면 되지 않는가.’
마침 올초에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독학했던 파이썬 공부가 떠올랐다. 늦은 나이에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공부였지만, 이 작은 배움을 현장의 무기로 바꿔보자고 결심했다.
도전을 결심하고 마주한 든든한 조력자는 다름 아닌 AI, 제미나이였다. 코딩의 기술적인 문법이나 복잡한 에러는 AI가 든든하게 받쳐주니, 나는 현장의 필요를 파악하고 기획하는 데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세상에 이처럼 똑똑하고 성실한 직원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시작된 개발 작업은 놀라운 속도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연구원들이 최적의 조건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실험계획법(DOE) 지원 도구
방대한 학술 논문을 효율적으로 탐색하고 정리해 주는 검색 지원 프로그램
반복되는 문서 작업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연구보고서 작성 지원 프로그램
현장의 자산을 체계적으로 추적하는 실험 장비 관리 시스템
이 모든 것들이 불과 두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만들어졌다. 전문 프로그래머라 해도 현장의 도메인 지식 없이 이 속도를 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현장을 아는 베테랑의 안목과 최신 AI 기술이 만나 빚어낸 뜻밖의 시너지였다.
이제는 코딩과 프로그램 개발에 상당한 자신감도 붙었다. 무엇보다 가슴 벅찬 것은, 나라는 사람이 이곳에 여전히 쓸모가 있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는 실감이다.
존재감은 누군가 만들어주는 자리가 아니라, 내가 내딛는 새로운 발걸음 끝에 피어나는 것임을 새삼 배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배움과 도전에는 정년이 없다. 오늘도 화면 가득 채워진 코드와 연구원들의 가벼워진 손길을 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