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아들과 함께 다시 학생이 되다
나의 '전무후무'한 공부 도전기
1. 프롤로그: 멈추지 않는 도전
은퇴를 앞둔 시점, 뒤를 돌아보니 나의 50대 후반과 60대 초반은 늘 '학생'의 신분이었다. 누군가는 늦었다고 할 때, 나는 다시 책을 폈다.
2. "전무후무"했던 MBA 시절 (2019~2021)
2019년, 한국방송통신대 경영대학원(MBA)에 도전했다. 솔직히 대학원이니 경쟁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가볍게 지원했다가 몇 번이나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아마 학부 시절 좋지 않았던 성적 탓이었으리라. 결국 추가합격 6번이라는 턱걸이로 겨우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입학하니 공부가 너무 즐거웠다. 내가 현장에서 겪는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어떻게 일을 더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들이 그곳에 있었다.
- ERP 도입: 당시 우리 회사에 없던 ERP 시스템을 동기 회사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도입했다.
- 든든한 인맥: 노무사, 변호사 동기들에게 실제 업무 자문을 구하며 도움을 받았다.
대학원 시절 내 별명은 '전무'였다. 당시 회사 직급이 전무이기도 했지만, 동기들은 "추가합격으로 들어와서 이렇게 전무후무(前無後無)하게 열심히 하는 사람은 처음"이라며 붙여준 별명이었다. 그만큼 치열하고 재밌게 공부했고, 만족스럽게 졸업했다.

3. 무기를 장착하다: 자격증 취득
MBA 졸업 후 자신감이 붙었다. 바로 품질경영기사를 취득하니 업무 중 통계 분야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회사 일에 확신을 가지고 적용할 수 있었다. 이어 회사 내 크고 작은 안전사고들을 보며 산업안전기사까지 취득했다. 이론과 실무가 합쳐지니 모든 업무에 두려움이 사라졌다.
4. 아내의 권유, 그리고 아들과의 동행 (영문과 편입)
"당신, 영어 공부 좀 해보는 게 어때?" 해외 출장도 잦고 체류 경험도 많았지만, 영어는 늘 나에게 숙제이자 두려움이었다. 아내의 권유에 용기를 내어 방송대 영문과 2학년으로 편입했다. 혼자가 아니었다. 아들도 나와 함께 입학했다.
지난 3년, 매일 과제와 씨름하고 '파씨(FarSee) 스터디' 멤버들과 줌(Zoom)으로 토론하며 치열하게 보냈다. 여전히 영어는 어렵고 부족함을 느끼지만, 이제 곧 졸업을 앞두고 있다. 아들과 함께 캠퍼스 생활(비록 온라인이지만)을 공유했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이다.
아마도 영어는 평생 공부해야 할 모양이다. 평생해도 영어에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긴하다. (솔직히 말하면 영어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이 없어진다 .. )
5. 새로운 시작: 데이터로 다시 쓰다 (파이썬)
영문과 졸업을 앞두고 보니, 이제는 데이터를 다루는 능력이 필요해 보였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파이썬(Python)이다. 이번에도 아들과 함께다. 서로 경쟁하듯 코딩을 배우고 데이터를 분석한다. 머리가 굳어 어렵긴 하지만, 시작했다는 것 자체에 자부심을 느낀다.
무엇보다, 다 큰 아들이 아버지를 어려워하지 않고 공부를 핑계 삼아 나랑 같이 놀아주는 것이 참 고맙다.
6. 맺음말
내 닉네임처럼 '전무후무'한 도전은 계속된다. 60대, 나는 오늘도 아들과 함께 책상 앞에 앉는다. (따로 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