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30년, 데이터로 다시 쓰다

수억 원짜리 클레임을 막아낸 '통계의 힘', 그리고 파이썬

파이썬 공장 2026. 1. 7. 07:06
728x90
반응형
SMALL

엔지니어로, 또 경영자로 30년을 현장에서 보내다 보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오늘은 문득 파이썬 공부를 하다가 떠오른, 과거 외국계 거대 기업 C사와의 '클레임 전쟁'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1.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다?

C사는 우리 회사의 아주 큰 고객이었습니다. 몇 년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제품을 잘 납품하고 있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클레임(Claim)이 접수되었습니다. 그것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습니다.

이유인즉슨, "제품이 도면 스펙(Spec)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현장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있습니다. 고객사의 요청으로, 혹은 조립 편의성을 위해 현장 맞춤형으로 치수를 미세하게 조정해서 납품하곤 합니다. 일종의 '현실 타협'이자 암묵적인 합의였죠. 수년간 아무 문제 없이 잘 써왔으니까요.

그런데 담당자가 바뀌었는지, 몇 년이 지난 지금 와서 "도면과 다르니 전량 불량이다"라고 치고 나오니 정말 기가 막히고 억울할 노릇이었습니다.

2. "억울합니다"는 통하지 않는다

상대는 글로벌 대기업. "그동안 잘 썼지 않습니까", "그때는 괜찮다고 했잖아요" 같은 감정적인 호소는 전혀 먹히지 않았습니다. 법대로, 도면대로 하자는 그들의 논리에 우리는 꼼짝없이 당할 위기였습니다.

그때, 제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왕년에 품질경영기사 자격증을 따며 공부했던 '통계'였습니다.

"그래, 과거에 납품해서 문제없었던 제품(Good)과, 지금 불량이라고 주장하는 제품(NG?)이 통계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걸 증명하면 되잖아?"

저는 즉시 과거 데이터와 현재 데이터를 모아 분산분석(ANOVA)을 시도했습니다. 두 집단이 통계적으로 '같은 집단'임을 증명해서, 이 치수 차이가 품질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논리를 세우기 위해서였죠.

3. 그땐 그랬지 (Minitab과 지인 찬스)

하지만 당시엔 분석 자체가 고역이었습니다. 통계 프로그램의 대명사인 '미니탭(Minitab)'은 너무 비싸서 회사에 없었고, 엑셀로 그 복잡한 분산분석을 돌리자니 식은땀이 났습니다. 결국 미니탭을 가진 지인에게 부탁해 데이터를 보내고, 밥 한 끼 사주며 결과를 받아야 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더군요. 과거 제품과 현재 제품은 통계적으로 완벽하게 동일한 수준임이 증명되었습니다. 이 객관적인 리포트를 들이밀자, 콧대 높던 C사도 반박하지 못하고 클레임을 철회했습니다.

회사의 막대한 손실을 막아냈을 때의 그 짜릿함, 그리고 같이 고생하며 데이터를 모으던 직원이 " 통계가 진짜 쓸모가 있네요"라며 뿌듯해하던 표정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4. 이제는 '파이썬'과 'AI'의 시대

그때 그토록 힘들게 했던 분석을, 오늘 아침 저는 단 몇 분 만에 해냈습니다.

이제는 부탁할 지인도, 비싼 프로그램도 필요 없습니다. 제가 배우고 있는 파이썬(Python) 코드 몇 줄, 아니 그조차 어려우면 AI 비서인 제미나이(Gemini)에게 "이거 분석해 줘"라고 말만 하면 끝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파이썬으로 T-test를 돌려보며 혼자 웃었습니다. '그때 이런 도구가 있었으면, 밤새 끙끙 앓지 않고 10분 만에 해결하고 퇴근해서 소주나 한잔했을 텐데.'

5. 어렵지 않습니다, 도전해 보세요

제조업에 계신 동료 여러분, 그리고 후배님들. "나이 먹고 무슨 코딩이냐", "현장 밥 먹던 사람이 무슨 데이터냐" 하며 손사래 치지 마십시오.

우리가 가졌던 30년의 현장 경험위에 파이썬이라는 최신 무기를 장착하면,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C사의 클레임을 막았던 그 논리를, 이제는 누구나 쉽게 클릭 몇 번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세상이 참 편리해졌습니다. 이 편리함을 내 것으로 만드는 건, 결국 '도전'하는 마음 하나뿐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