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기록 38] 길도, 마음도 잃지 않게 해주었던 '인간 내비게이션', 나의 둘째 매형
지금은 자동차 시동을 걸면 습관적으로 내비게이션부터 켠다. 모르는 길은 물론이고 아는 길도 실시간 교통 정보를 얻기 위해 기계의 목소리에 의존하는 시대다. 하지만 이 편리한 기계가 세상에 없던 시절, 우리 가족에게는 그보다 더 정확하고 든든한 '인간 내비게이션'이 있었다. 바로 나의 둘째 매형이다.
1. 지도가 머릿속에 있었던 사람
둘째 매형에게는 정말이지 신기한 능력이 하나 있었다. 초행길이라 해도, 아무리 복잡한 골목이라 해도 매형은 망설임 없이 핸들을 꺾었다. 조수석에 앉아 "매형, 이 길 맞아요?"라고 물을 새도 없이, 우리는 이미 목적지에 정확히 도착해 있곤 했다.
요즘 같은 GPS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저 머릿속에 지도를 펼쳐놓은 듯, 매형은 어디든 한 번에 찾아갔다. 그 거침없는 운전 실력과 방향 감각은 볼 때마다 경이로웠다. 길을 잃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운전을 잘한다는 것을 넘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무한한 신뢰감이었다.

2. '백년손님'이 아닌 '진짜 식구'
흔히 사위는 '백년손님'이라 하여 깍듯하지만 다소 어려운 존재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우리 집 매형들은 달랐다. 아니, 둘째 매형은 유독 더 그랬다. 매형은 손님 자리에 앉아 대접받기를 거부하고, 기꺼이 우리 가족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궂은일을 자처했다.
집안에 크고 작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매형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단순히 말로만 위로하는 것이 아니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땀을 흘리며, 마치 자신의 일인 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다녔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음에도, 매형은 우리 형제들보다 더 진한 가족애를 보여주곤 했다.
3. 경마장 주차장의 땀방울
가장 기억에 남는 모습은 큰누나가 경마장 주변에서 주차장 사업을 할 때였다. 주말이면 경마장 주변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혼잡했고, 거친 일들이 다반사였다. 여자의 몸으로 감당하기엔 벅찬 순간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때마다 구원투수처럼 등장한 것이 둘째 매형이었다. 매형은 본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말이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와 누나를 도왔다. 뙤약볕 아래서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차들을 정리하고, 험한 소리가 오가는 현장을 묵묵히 지켰다.
그 탁월한 '내비게이션' 능력으로 차들을 척척 정리해 내던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누나의 고단함을 덜어주기 위해 헌신하던 그 뒷모습. 그것은 단순히 일을 돕는 차원이 아니라, 처가 식구의 아픔과 고생을 함께 짊어지겠다는 무언의 약속과도 같았다.
4. 길을 알려주던 사람
돌이켜보면 매형은 도로 위의 길만 잘 찾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이 힘들고 지쳐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묵묵히 앞장서서 길을 터주고 방향을 잡아주던 인생의 내비게이션이었다.
계산적이지 않았던 헌신, 조건 없던 사랑. 우리 남매들이 굴곡진 세월을 건너오며 서로를 의지할 수 있었던 건, 매형들처럼 든든한 버팀목이 "진짜 가족"이 되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따라 막힘없이 목적지를 찾아주는 내비게이션을 보며, 문득 그 시절 투박하지만 따뜻했던 둘째 매형의 운전대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