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기록 33] 독산동 단칸방의 햇살과 고마운 인연, 강한섭 선배님
시간이 흘러 지금은 많은 것이 변했지만, 가끔 눈을 감으면 그 시절 독산동의 공기가 떠오릅니다. 누나, 그리고 여동생 현미와 함께 이사했던 그곳은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작은 단칸방이었습니다.
근처 도살장에서 풍겨오는 고약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지만, 우리 삼 남매에게는 그저 몸을 뉘여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시절이었습니다.

가리봉역까지의 20분, 그리고 누님의 헌신
매일 아침 학교에 가기 위해 독산동 집에서 가리봉역까지 걸었습니다. 족히 20분,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매일같이 걸었을 것입니다.
대학생이었지만 주머니는 늘 가벼웠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당구장으로 향하는 친구들이 부러울 법도 했지만,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누나가 고생해서 벌어다 준 귀한 돈을 차마 유흥에 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잡으며 외로운 길을 걷던 제게, 운명처럼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긍정의 힘을 가르쳐준 사람, 강한섭 선배
고등학교 1년 선배였던 강한섭 선배님은 제 대학 생활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소아마비로 인해 신체적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 누구보다 밝고 똑똑하며 성실했던 분입니다.
제가 ROTC 훈련과 수업을 병행하느라 시험 준비를 못 할 때마다, 선배님은 아무 조건 없이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자신의 불편함보다 후배의 막막함을 먼저 살펴주던 따뜻한 사람. 군대를 가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국가의 일꾼이 되려는 저를 진심으로 응원해 주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묻는 안부
그 후 선배님은 건설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멋지게 사회생활을 이어가셨습니다. 바쁜 직장 생활 중에 사무실에서 우연히 한 번 뵌 적이 있지만, 서로의 삶이 치열하다 보니 긴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이 늘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형님, 그때 정말 고마웠습니다."
말 한마디 제대로 전하지 못한 채 세월이 흘렀지만, 독산동의 그 차가운 방에서 나를 버티게 했던 건 누님의 사랑과 선배님의 따뜻한 우정이었음을 이제야 다시금 깨닫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제 길을 갔던 그때의 청년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힘든 시기를 함께 견뎌준 인연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며, 오늘 하루도 그 시절의 초심을 되새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