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기록

[추억 기록 31] 철거 예정인 집에서 배운 '준비'의 힘: 8시간의 일을 4시간에 끝내는 비결

파이썬 공장 2025. 12. 27.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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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결국 염소집으로 이사를 했다."

새어머니와 이혼하신 후, 아버지께서 우리 남매(나, 현자 누나, 현미)를 데리고 들어간 곳은 이른바 '염소집'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곧 철거가 예정된 집, 언제 헐릴지 모르는 시한부 운명의 빈집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 허름한 집에서 비로소 '숨 쉴 틈'을 얻었다. 주인집 아저씨는 불을 끄라고 닥달하지 않았다. 덕분에 눈치 보지 않고 환하게 불을 켜고 살 수 있었고, 마당 있는 그 집에서 우리 가족은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

130포기의 김장과 아버지의 염도계

그해 겨울, 아버지는 비장하셨다. 자식 셋을 건사해야 한다는 가장의 무게였을까. 우리는 무려 130포기의 김장을 했다. 특이한 것은 아버지가 '염도계'를 쓰셨다는 점이다. 보통의 어르신들이 손맛이나 눈대중으로 간을 맞출 때, 아버지는 정확한 수치를 측정해 김치를 담그셨다. 그리고 마당 한편을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깊게 파서 김치독을 묻고 월동 준비를 철저히 하셨다.

지금 내가 제조업 현장에서 데이터와 품질 관리를 중요시하는 것도, 어쩌면 그때 그 염도계를 들고 계시던 아버지의 꼼꼼함과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물려받은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새벽 첫차와 연삭기: 8시간을 4시간으로 단축하다

그 집에서 기계공고를 다니던 시절, 기숙사가 폐지되면서 나는 1-5번 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다. 그때 내 몸에 평생의 자산이 된 습관이 생겼다. 바로 '남들보다 먼저 도착해서 준비하는 것'이다.

나는 늘 새벽같이 학교에 갔다. 이유는 단순했다. 기계 실습 시간, 남들보다 먼저 가야만 상태가 좋은 '연삭기'를 선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실습실에서 차분하게 기계를 닦고 공구를 세팅하는 시간은 나만의 의식과도 같았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실습 시간이 시작되고 다른 친구들이 부랴부랴 공구를 챙기고 기계를 세팅하느라 허둥댈 때, 나는 이미 차분하게 가공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준비된 자의 여유는 압도적인 효율로 이어졌다. 보통 8시간은 꼬박 걸리는 작업을, 미리 완벽하게 준비한 덕분에 절반인 4시간 만에 끝낼 수 있었다.

새벽 첫차를 타고 움직여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준비하는 것. 그것이 단순히 부지런함의 문제가 아니라, 남들보다 훨씬 유리한 고지에서 시작하는 '전략적 승리'임을 그때 뼈저리게 깨달았다.

킨타쿤테라 불리던 친구

그 치열했던 새벽 등교길, 내 곁에는 '채기범'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피부가 까무잡잡해서 우리는 그를 '킨타쿤테'라고 불렀다. 함께 기름밥을 먹으며 미래를 꿈꾸던 벗이었다.

그 친구는 나중에 서울교대에 진학해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참 대단한 친구였다. 하지만 훗날, 우연히 마주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는 나를 모른 척했다. 나는 정말로 반가웠는데 문자로 연락을 다시해도 답은 없었다. 서운함도 있었지만, 이제는 이해하려 한다. 그에게도 그 시절은 치열하게 넘어야 할 산이었을 테니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철거될 집에서 보낸 그 시절. 불안했지만 자유로웠고, 가난했지만 치열하게 준비했던 그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는 지금도 남들이 말하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내 마음은 같다. 어떤 상황이 닥치든, 그저 내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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