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기록

[추억 기록 28] 큰누님의 명령은 곧 실행이다" 나의 20일 결혼 대작전

파이썬 공장 2025. 12. 2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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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경마장이 들어서기 전, 그 옛날 인덕원의 풍경이 문득 떠오른다.

당시 큰누나네는 매형과 함께 인덕원으로 이사를 와서 '지물포'를 열어 사업을 시작했다. 벽지와 장판을 파는 가게였다. 매형은 나름대로 참 부지런히 일을 하셨다. 오토바이에 벽지와 장판을 싣고 이곳저곳을 누비셨고, 사업이 자리를 잡아가자 일을 할 수 있는 든든한 렉스턴 차를 한 대 구매하시고는 어린아이처럼 나에게 자랑을 하시기도 했다.

예전과 다르게 우리 식구들을, 그리고 처남인 나를 끔찍이도 챙기셨던 매형. 부모님을 일찍 여읜 나를 가족처럼 대해주시고,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내 등록금까지 챙겨주곤 하셨다. 나에게 큰누나네 집은 언제나 마음의 고향이자, 내가 돌아가 쉴 수 있는 '진짜 집'이었다. 늘 고마운 마음뿐이다.

1990년 1월 1일, 운명의 독일 빵집

1989년 12월 말일, 구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나는 여느 때처럼 큰누나네 집을 찾았다. 구미에서 올라오면 자연스럽게 발길이 향하는 곳이었다.

그때 누나는 동네 약국의 약사님과 친구처럼 지내고 있었는데, 마침 그 약사님에게 여동생이 있다고 했다. 누나는 대뜸 그 동생과 선을 보라고 했다. 그렇게 해가 바뀌어 1990년 1월 1일 정오. 나는 약속 장소인 '독일 빵집'에 앉아 있었다. 새해 첫날, 첫 시간의 만남. 그것이 지금 내 아내와의 첫 만남이었다.

20일 만의 속전속결, "누나의 말은 법이다"

선을 보자마자 큰누나는 기다렸다는 듯 결혼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요즘 말로 하면 '불도저'가 따로 없었다. 바로 그 주 토요일인가에 상견례를 했다. 그다음 주에는 약혼식을 올렸다. 매형과 누나는 내친김에 예식장 예약까지 일사천리로 끝내버렸다.

상대방과는 정말로 몇 번 얼굴을 마주 보지도 못한 상태였다. 아내가 될 그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정말로 결혼을 할 거예요?"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그때 나에게는 '생각'이나 '조건'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큰누나의 명령은 곧 실행이었다. 우리는 큰누나가 시키면 뭐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결혼에 적합한지 안 한지는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나를 키워준 누나와 매형이 맺어준 인연이라면 의심할 여지가 없었으니까.

1990년 1월 21일, 안양 결혼 회관

그렇게 1월 1일에 처음 만난 우리는, 정확히 20일 뒤인 1990년 1월 21일 안양 결혼 회관에서 식을 올렸다. 그리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지금 돌이켜봐도 참 기가 막힌 속도다. 내 주위를 둘러봐도 나보다 더 빠르게, 번개불에 콩 구워 먹듯 결혼한 사람은 아직 구경을 못 해봤다.

조건을 따지고, 오랜 연애를 거쳐도 결혼을 망설이는 요즘 세태를 보면, 그때의 나는 참 무모하고도 순수했다. 하지만 36년이 훌쩍 넘은 지금, 나는 그때 큰누나의 그 '강력한 추진력'이 내 인생 최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 채, 우리는 제주도로 향했다. 하지만 낭만 가득해야 할 신혼여행지에서 우리 부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막힌 신혼여행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풀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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