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기록

[추억 기록 26] 단칸방, 그리고 탈출구로서의 기계공고

파이썬 공장 2025. 12. 26. 07:43
728x90
반응형
SMALL

오복상회를 떠나 비좁은 단칸방 생활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아버지는 또다시 새로운 사람을 집으로 들이려 하셨다.

어느 날 아버지는 내 손을 이끌고 성남의 어느 무당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소개받은 분은 바로 그 집의 딸이었다. 어린 내 눈에 비친 무당집의 풍경은 공포 그 자체였다. 형형색색 걸려 있는 천들, 코를 찌르는 향 냄새, 그리고 나를 압도하는 기이한 분위기. 그곳은 나와 전혀 맞지 않는 세상이었다.

'이런 곳에 사시는 분이 나의 새어머니가 된다고?'

거부감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이 올라왔다. 하지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당집의 딸이라고 소개받았던 그분이 며칠 뒤 정말로 새어머니가 되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좁디좁은 단칸방으로 들어오신 것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그분을 '엄마'라고 부르라고 강요하셨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낯선 무당집의 딸, 그리고 이 숨 막히는 단칸방의 공기 속에서 나는 그분을 엄마라 부를 수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분과의 동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버지와 그 새어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지셨고, 나에게도 그 뒤의 기억은 희미하게 지워졌다.

가정은 불안정했고, 가난은 지독하게 나를 옥죄어 왔다.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었다. 살기 힘들다는 생각은 생존에 대한 본능을 일깨웠다. 중학교 3학년, 진로를 결정해야 할 시기가 왔을 때 나는 서둘러 살길을 찾아야 했다.

처음 나의 목표는 금오공고였다. 국비 지원 혜택이 있어 나에게는 꿈의 학교나 다름없었고, 당연히 내가 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났다. 한 중학교에서 단 한 명만 지원할 수 있다는 규정이 내 발목을 잡았다. 공교롭게도 나보다 성적이 조금 더 좋았던 친구가 그곳에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난을 탈출할 유일한 비상구가 막혀버린 기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차선책으로 선택한 곳이 바로 기계공고였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돌이켜보면 그때의 좌절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금오공고에 가지 못하고 기계공고로 진학하게 된 그 길이, 훗날 내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준 운명적인 갈림길이었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 만류하셨다. "너는 공부를 곧잘 하니 인문계로 가는 게 어떻겠니?"

선생님은 나의 가능성을 보고 인문계 진학을 종용하셨지만,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당장의 현실이 너무나 시급했다. 나라도 빨리 졸업해서 돈을 벌어야만 했다. 무엇이라도 기술을 배워서 이 지긋지긋한 가난의 고리를 끊어내야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기계공고로 이끈 결정적인 이유는 '기숙사'였다. 그 당시 그 학교에는 기숙사가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단순히 잠을 자는 곳이 아니었다. 숨 막히는 단칸방, 불안한 아버지, 언제 또 바뀔지 모르는 가정환경으로부터의 완벽한 '탈출구'였다.

그렇게 나는 살기 위해, 그리고 도망치기 위해 기계공고라는 선택지를 집어 들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