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기록 20]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았던, 그 시절의 '큰집'
우리집 바로 곁에는 진짜 친척은 아니지만,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큰집'이 있었다.
아버지와 그 집 어르신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마치 '의형제'처럼 지내셨다. 우리는 해 주 오씨였고, 그 집은 해주 오씨가 아니었다. 하지만 본의 다름 따위는 두 분의 우정 사이에 아무런 장벽이 되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분을 친형님처럼 깎듯이 모셨고, 우리 가족 모두 자연스럽게 그 집을 '큰집'이라 부르며 살았다.

그 집에는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이 있었다. 이름은 '오세흥'. 한 살 터울이라 우리는 친형제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어울렸다. 명절날 아침이면 우리 식구는 당연하다는 듯 세흥이 형네로 건너가 차례를 지냈다. 어린 마음에 나는 그곳이 정말 나의 큰집인 줄로만 알았다. 그만큼 두 집안의 경계는 희미했고, 왕래는 문턱이 닳도록 잦았다.
기억 속의 '큰어머니'는 참으로 후덕하고 마음이 넓으신 분이었다. 철없는 우리 형제들에게 늘 다정하셨고, 맛있는 것이 생기면 항상 우리를 챙겨주시던 따뜻한 품이 기억난다. 그 넉넉한 웃음 덕분에 우리는 남의 집이라는 어려움 없이 드나들 수 있었으리라.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고, 명절을 함께 보내며 살 부대끼던 그 시간들 속에, 정작 특별히 기억에 남는 '큰 사건'은 없다. 그저 밥 먹듯 평범하고 잔잔한 일상들이었기 때문일까. 너무나 당연하게 곁에 있었기에, 특별한 이벤트로 기억될 필요조차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더욱 기이한 것은 그 관계의 마지막이다. 그 집이 이사를 간 것인지, 아니면 어떤 사연으로 멀어진 것인지, 도무지 내 기억 속에는 남아있지 않다. 작별 인사를 나누며 울었던 기억도, 이삿짐 트럭을 배웅하던 기억도 없다.
마치 한 편의 영화가 클라이맥스 없이 페이드아웃(Fade-out) 되듯, 그 시절의 '큰집'은 내 유년의 기억 속에서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인지 가끔 생각난다.
진짜보다 더 따뜻했던 가짜 큰집. 세흥이 형, 그리고 후덕하셨던 큰어머니. 그분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