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기록19] 밤하늘의 별처럼 우리를 비춰주던 사람, 나의 큰누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우리 남매들에게 '어머니'라는 단어는 곧 '큰누나'였습니다. 어머니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고 시려웠던 그 시절, 묵묵히 그 자리를 채워준 사람은 다름 아닌 큰누나였기 때문입니다.
내 기억 속 큰누나는 어느 전자회사의 공장 같은 곳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우리 남매들은 약속이나 한 듯 마중을 나갔는데, 그곳은 바로 '성황당 고개'였습니다. 집에서 고갯길로 조금만 올라가면 나오는 그 정류장에서, 가로등도 드문드문하던 시절 우리는 하염없이 버스가 오는 길목만 바라보며 서 있었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몰아치는 날도 있었지만, 어떤 날은 밤하늘에 별이 비처럼 쏟아지는 아름다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머리 위로 쏟아지던 그 별빛만큼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저 멀리 그 동네를 오가는 유일한 버스였던 '288번'버스 불빛이 보이고 마침내 누나가 내릴 때, 누나의 손에 들려 있던 자그마한 간식거리들. 그게 붕어빵이었는지, 과자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누나가 그걸 내밀 때면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행복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큰누나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큰누나는 우리 집의 실질적인 가장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계셨지만, 우리 남매들을 먹이고 입히고 건사하며 집안을 이끌어간 건 오롯이 큰누나의 희생과 노동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누나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했고, 누나의 등 뒤에 숨어 세상을 버텼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우리도 하나둘 자라고,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갈 무렵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함씨 아저씨'네 소개로 선 자리를 마련하셨고, 큰누나는 지금의 매형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누나가 시집을 가던 날, 나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집의 기둥이 뽑혀 나가는 것 같았고, 이제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야 하나 덜컥 겁이 났습니다. 누나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우리를 지켜주던 커다란 보호막이 사라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귀하게 우리를 키워내고, 자신의 청춘을 다 바쳐 가족을 건사했던 우리 누나가... 시집가서 매형에게 맞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때의 그 심정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우리 누나가 어떤 사람인데..." "우리가 어떻게 의지했던 사람인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고,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친정 식구들을 위해 헌신하느라 정작 본인의 삶은 챙기지 못하고 떠밀리듯 간 시집에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상처까지 받았다는 사실이 동생으로서 너무나 죄스럽고 원통했습니다.
별이 쏟아지던 성황당 고개 버스 정류장에서 우리를 향해 웃어주던 누나의 젊은 날. 그 고단하지만 빛나던 청춘을 기억하기에, 누나의 아픔은 내게 더욱 깊은 슬픔으로 박혀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었던 나의 큰누나. 오늘따라 그 시절, 성황당 고개의 밤하늘이 유난히 그립고 또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