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기록

[추억 기록 14] 아버지와의 약속: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이유

파이썬 공장 2025. 12. 2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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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껏 담배를 피우지 않고 살고 있다. 보통 한국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오면 자연스럽게 담배를 배우게 된다고들 한다. 요즘은 주변을 둘러보면 여성분들도 담배를 많이 피우는 추세다. 물론 누군가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흉보거나 비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그저 내가 왜, 어떤 이유로 담배를 입에 대지 않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내가 비흡연자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와의 약속 때문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아주 간곡하게 딱 한 가지를 당부하셨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절대로 담배를 피우지 말거라."

나는 그 약속을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호기심이나 장난 삼아 한 번 피워보라고 권유해 올 때도 나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오로지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군대에서도 그 다짐은 흔들리지 않았다. 훈련 중 꿀맛 같은 휴식 시간이 되면 조교는 "담배 1발 장전!"을 외친다. 그러면 동기들은 모두 신나게 담배를 입에 물고 연기를 내뿜는다. 당시엔 담배가 보급품으로 나오던 시절이었다. 내 몫으로 나온 보급 담배는 언제나 주변 동료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내 담배를 받아 든 동기들은 횡재했다며 좋아했고, 덕분에 나는 인심 좋은 동기가 되었다.

나는 군에서 교육 장교를 맡았다. 나름대로 권한이 있는 자리다 보니 책상 서랍에는 알음알음 들어온 담배 뇌물(?)이 쌓이곤 했다. 하지만 나는 결코 피우지 않았다. 다행히 환경도 나를 도왔다. 전방 벙커에서 근무할 때 모셨던 직속상관인 작전과장님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 담배를 피우지 않으셨고, 육사 출신이었던 작전보좌관 권순필 소위 (나는 ROTC 소위)도 비흡연자였다. 덕분에 군대라는, 담배를 배우기 가장 쉬운 곳에서도 나는 깨끗한 폐를 지킬 수 있었다.( 권순필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할 시간이 있겠지)

진정한 위기는 오히려 사회에 나와서 찾아왔다. 회사에 입사하니 사무실 책상마다 재떨이가 놓여 있었고, 누구나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워대던 시절이었다. 사무실 천장은 담배 연기에 찌들어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그야말로 너구리 굴 같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여직원들은 제발 담배 좀 줄이라며 남자 직원들에게 사탕을 사다 나르며 읍소하곤 했다.

그 자욱한 연기 속에서 '나도 한번 배워볼까?' 하는 충동이 아주 잠깐 스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담배에 대한 호기심조차 사라진 뒤였다. 결국 나는 끝까지 담배를 배우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금연을 그토록 당부하셨던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담배를 끊지 못하셨다. 하지만 아들이 담배를 피우지 않기를 바라셨던 아버지의 마음, 그리고 그분과 맺었던 약속 하나만큼은 내가 끝까지 지켜냈다. 이것이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작지만 소중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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