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기록

[추억 기록 4] 오현자 동생으로 살아가기 - 말죽거리의 비애, 그리고 누나의 사랑

파이썬 공장 2025. 12. 24.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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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콩나물 시루 같았던 말죽거리의 전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서울 말죽거리에 있었다. 당시는 경기고, 휘문고, 서울고 등 명문 학교들이 강남으로 이전해 오며 소위 '8학군'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던 시절이었다.

학교에는 하루가 멀다고 전학 오는 아이들이 줄을 이었다. 한 학년에 2,000명이라니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숫자지만, 그때는 그랬다. 교실은 이미 포화 상태라 선생님이 서 계신 교탁 옆 교단(교상) 위에까지 책상을 올려두고 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야말로 숨 쉴 틈 없는 콩나물 시루였다.

2. 1학년 8반의 비극적 운명 그 북새통 속에서 나는 1학년 8반이 되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일까. 우리 학교 전교 1~2등을 다투는 전설적인 여학생, 바로 나의 셋째 누나 '오현자'. 그리고 누나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변혜란'. 하필이면 그 변혜란의 남동생 '변종호'가 나와 같은 반이 된 것이다.

전교 톱을 달리는 누나들을 둔 두 남동생이 한 반에 모였으니, 그날부터 우리의 학교생활은 지옥이 되었다.

3. 이름을 잃어버린 소년들 수업 시간마다 교실 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레퍼토리는 똑같았다. 출석부는 그저 거들 뿐, 내 이름 석 자는 불리지 않았다.

"오현자 동생이 이 반에 있다던데... 너냐? 영어 책 읽어봐." "변혜란 동생도 여기 있다지? 너도 일어나서 읽어봐."

나와 종호가 쭈뼛거리며 책을 읽고 나면 선생님들의 핀잔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누나들은 그렇게 똑 소리 나는데, 동생 놈들은 왜 이렇게 어리버리하냐?"

종호와 나는 서로 눈빛만 교환하며 죽을 맛을 삼켜야 했다. 반에서 10등 정도면, 그 치열한 8학군에서 결코 나쁜 성적이 아니었음에도 우리는 늘 누나들의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져야 했다.

4. 전쟁터 같았던 집, 누나의 '강제 학습' 학교에서 '오현자 동생'으로 불리며 기죽어 돌아오면, 집은 또 다른 전쟁터였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의 빈자리, 그 자리를 대신한 새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우리 집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고성이 오가고 문이 쾅쾅 닫히는 불안한 공기가 어린 내 숨통을 조여오곤 했다. 어린 마음에도 '왜 우리는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할까'라는 원망이 가득했다.

그 시끄러운 소용돌이 속에서 셋째 누나는 나를 붙잡았다. "공부해. 딴생각 말고 책 봐."

누나의 스파르타식 교육은 단순히 성적을 올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집안의 소란 속에서, 동생이 휩쓸리지 않고 온전히 제 인생을 찾아가길 바라는 누나만의 처절한 방어 방식이었던 것이다.

5. 맺음말 "엄마 없는 자식 소리 듣지 않게 하려고", "이 지긋지긋한 가난과 불화에서 동생만큼은 끄집어내려고..." 그때는 몰랐다. 누나의 그 독한 채찍질이, 사실은 울타리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서 막내 동생을 지키려던 누나의 피눈물 나는 사랑이었다는 것을.

60이 넘은 지금, 나는 다시 한번 그 이름을 불러본다. 나의 누이이자, 나의 두 번째 어머니였던 사람. 오현자 여사님, 당신의 동생으로 살아온 세월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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